그런데 ‘EU 국민’은 미국으로 대변되는 신(新)자유주의와 경제 위기로 인해 정치 통합에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EU통합과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과 긴축 정책에 반발하는 극좌 정당이 세(勢)를 불린 것으로 집계됐다.
프랑스는 극우 세력 국민전선이 창당 이후 최고 득표율을 보이며 집권 사회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영국 역시 108년 만에 보수·노동당의 양당체제를 허물고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금융으로 복지혜택이 대거 축소된 그리스에서는 긴축에 반발하는 극좌 정당이 우위를 점했다.
이처럼 극우와 극좌 정당이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EU통합에 따른 피로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유로존 위기 해법을 놓고 EU는 이른바 ‘문제아 그룹’인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과 모범생인 독일 등의 북유럽 진영이 첨예한 대립을 보여왔다.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에 무자비한 긴축 정책을 강요하는 독일을 바라보며 문제아 그룹은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점들이 결국 EU통합에 반대하는 반(反)EU정서로 확대됐고 극우 정당이 세를 얻는 결과를 낳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영국 국민들은 전통적으로 탈퇴 요구가 강한 상태에서, EU가 금융 위기를 계기로 은행감독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불만을 가져왔다. 영국의 강점인 금융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EU통합을 주도했던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이 힘을 얻은 것도 넘쳐나는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대한 반감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중도 우파 및 중도 좌파가 주류를 형성했지만, 반 EU를 주장하는 세력이 일정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통합의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극우 정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영향력을 행사할 게 자명하다. 유럽의회 교섭단체는 28개 회원국 중 7개국 이상에서 25명 의원이 참여하면 만들 수 있다.
극우 세력이 커지면서 EU 이민 정책의 근간인 노동시장 자유화는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EU-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선거 과정에서 동유럽 회원국이 보인 무관심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신규 회원국 확대 노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반 EU세력이 단일 정파를 구성하기에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관측도 있다.
김시홍 한국외국어대 EU센터장은 26일 “EU 유권자의 선택은 신자유주의와 성장이 더 이상 유럽에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극우 정당이 득세하긴 했지만 각각 회원국의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