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난 기자의 직격인터뷰] “흥분해서 잠도 안 오더라고요” 어느 노장 클라이머의 승부

[김 난 기자의 직격인터뷰] “흥분해서 잠도 안 오더라고요” 어느 노장 클라이머의 승부

기사승인 2015-01-17 07:00:55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따낸 이명희씨. 사진 강레아

이명희씨가 다음 홀드에 아이스 바일(등반용 장비)을 걸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사진 강레아

오버행(거꾸로 매달린) 구간에서

직장인 이명희씨, 아줌마 클라이머로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2위

예선 4위, 준결승 3위. 결승 2위, 42세 아줌마 클라이머가 ‘일냈다!’. 생애 첫 월드컵 결승 진출에 은메달을 따낸 이명희(42·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씨. 프로 선수도 아닌데다 청송 월드컵에 참여한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결승에 나간 터라 수상권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수상은 그야말로 이변.

“‘사고쳤네, 이명희’ 싶었습니다. 지난 5년간 목표로 했던 결승 진출을 이뤘기에 은메달을 수상했을 때보다 준결승을 마친 후가 더 기뻤어요. 다음날 결승을 앞두고도 흥분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였으니까요.”

이씨는 본래 고산거벽 등반가다. 파키스탄 카라코람 멀티4 등반,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아시아 최초 등정, 설악산 적벽 에코길, 독주길 여성최초 자유등반 등 등반가로서 굵직굵직한 경력을 자랑한다.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는 자연 등반을 위한 자극제이자 훈련 과정으로 출전해오고 있다.

그렇다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정을 돌보는 주부의 역할에 이화여대 클라이밍 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도 있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등반을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하고 해외 원정 등반도 떠난다. 그의 수상을 두고 ‘아줌마 클러이머의 저력’ 혹은 ‘노익장을 보여줬다’는 찬사와 함께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도 이 때문이다. 그가 결승을 마치자 후원사인 노스페이스 성기학 회장이 달려와 “그 나이에 대단하다”고 격려했다.

“월드컵 한 주 전에 열린 선수권대회에서 실수를 해서 힘 한 번 못 써보고 내려와서 아쉬웠습니다. 월드컵에서는 예선, 준결승, 결승 모든 경기를 죽을 각오를 하고 올랐습니다. 결승 갔다고 단상 위에 서는 걸 기대했으면 분명 실수를 했을 겁니다. 준우승은 보너스 같은 겁니다.”

경기 사진 속에서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려가며 온 힘을 끌어 모아 한 동작 한 동작 이어가고 있었다.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 역시 “사실 결승에서 나의 에너지는 루트 중반에서 끝났지만 사람들의 응원에 힘입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더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간의 훈련의 성과를 느꼈고 기량을 다 발휘하고 경기를 마쳤기에 아쉬움도 없다.

“아이스클라이밍이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있지만 하기 싫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다.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거꾸로 매달려가며 등반을 하는 게 참 신기하잖아요? 그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게 재미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자연 등반에도 도움이 많이 됐기에 꾸준히 해오고 있네요. 다만 박희용이나 신운선 선수처럼 월드컵에서 1, 2위를 다투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있지만 훈련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없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기존 선수 외에도 꿈나무들을 육성을 하려면 하나쯤은 생겨야 할 텐데요.”

이씨는 힘이 닿는 한 앞으로도 대회에 나갈 계획이다. 젊은 선수들과 달리 체력 회복이 빠르지 않아 다음날 치러지는 결승이 힘들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50대 선배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자연 벽에서든 인공 벽에서든 경기에서든 노장의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김 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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