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혜리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의 첫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되면서 한일관계가 결정적 전환점을 맞게 됐다.
청와대는 11월1일 한일중 정상회의를, 이를 계기로 이튿날인 2일에는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2013년 초와 2012년 말에 각각 취임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 번도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의 APEC 정상회의나 같은 달 호주 브리즈번에서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올해 3월 싱가포르에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 참석 계기 등에 환담 수준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한일 정상회담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5월 이후 3년6개월 만이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인 전제조건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다.
물론 지금도 위안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극적 타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음 달 1일께 열릴 한일중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거부하는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안보협력 필요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과거사 문제로 악화했던 한일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일관계의 개선을 강조하는 미국의 희망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로서는 내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가 한일관계 개선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를 넘기면 아베 총리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까지도 관계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한일 정상회담은 우리 정부의 '투트랙' 대일 외교 기조의 완결이라는 의미도 있다.
정부는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과거사와 안보·경제 등 상호 호혜적 분야를 분리 접근하는 '투트랙' 기조를 취해 왔지만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이 투트랙 기조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전을 사실상 전제조건으로 해온 기존의 접근법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8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처음 방문하고, 이듬해인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협력의 깊이와 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물론 아베 총리 역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다음 달 집중된 다자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과 상호 방문형식의 정상회담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을 하기에는 여전히 한일관계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맞물려 치열한 신경전과 샅바싸움이 전개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다음 달 2일 한일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극히 이례적 발표를 한데 대해 일본측에서 “그런 보도를 들은 바 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등 외교적 관례에 비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위안부 문제는 성공적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여정에서 여전히 걸림돌이다.
박 대통령은 물론 우리 정부는 의미 있고 건설적인 정상회담이 되기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 었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지만 일본측의 ‘획기적 제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한 청와대의 발표 내용도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게 만든다.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에서 “한일(관계) 발전 방안 및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짤막하게 밝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해 한일 양국간 현안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 교환이 예상된다”는 원론적 설명에 그쳤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별도 오찬 계획도 없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일관계의 완전한 정상화에는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고, 자칫 ‘빈손’ 논란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면 한일관계가 다시 뒷걸음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그동안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던 것 자체가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그런 비정상적 관계가 정상화의 길로 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했다”면서 “내용상 획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만남 그 자체가 정상화로 가는 일보(一步)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세영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도 “한일 간에 3년가량 정상회담이 없어서 우리 외교에도 부담이 되니 이를 다소 완화하는 것만 해도 소기의 성과”라면서 “이번 회담에서는 눈높이를 적절한 수준으로 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