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타인의 의사에 반해 그 사람의 ‘나체사진’을 공개했다. 그런데 유포자가 이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상식적으로는’ 절대 말이 안 되는 판결이 11일에 실제로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1일 내연녀의 나체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서모(53)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내연녀가 스스로 자기 신체를 촬영한 사진이기 때문에 나체사진을 공개한 혐의에 대해서는 서씨를 처벌할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내연녀 A씨는 ‘내연관계 시절’ 서씨에게 나체사진을 보냈고, 서씨는 A씨가 이별을 요구하자 가지고 있던 A씨의 나체 사진을 A씨의 딸 유튜브 동영상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올려 사진이 공개되도록 한 것이다.
법이라는 게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지만, 가끔 이렇게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11일 이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댓글 등에는 재판부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재판부만’ 도마 위에 오를 일일까.
일단 판결의 근거가 된 법조항을 보자. 성폭력범죄처벌법 제14조 1항과 2항이다.
‘카메라나 유사한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항)
‘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도 사후에 의사에 반해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2항)
1항의 ‘그 촬영물’이 보이는가. ‘…하거나’는 ‘ And’가 아닌 ‘Or’의 개념이기 때문에 ‘촬영하거나 촬영물을…’이라고 돼 있었다면 촬영만으로도, 그리고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것만으로도 처벌이 됐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촬영물’이 아닌 ‘그 촬영물’이기 때문에 내가 찍은 촬영물이 아니라면 전시·상영 행위 만으로는 ‘법리 상’ 처벌할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결국 ‘그’라는 지시대명사 하나가 천양지차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그렇다해도 피해사실이 너무나 명백한 사건에 법리의 엄격한 적용에만 무게를 뒀다는 아쉬움을 피해 갈 순 없다. 하지만 ‘죄형법정주의’를 지켜야 하는 재판부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오로지’ 재판부만 욕하고 있다면 좀 지엽적인 반응인 것 같다. 법리만 따진 재판부를 욕하면서 그 법리 자체의 부족함도 봐야 한다.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과학기술(혹은 디지털 기술)과 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성폭력범죄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는 ‘몰카’ 범죄가 창궐하며 생겼다고 한다. 디지털 기술·기기가 발전·확산되면서 그것을 이용한 성범죄 수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것을 따라 잡은 법조항인 것이다.
그런데 완벽하게 따라잡진 못했다.
현재의 발전된 기술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내가 찍지 않은 타인의 사진을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일반인 중에 간단한 해킹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많고, ‘환상적인 구글링’ 능력이 있을 때도 그렇다. 이게 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전 연인처럼 기본적 정보를 아는 경우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11일 대법원 논리에 따르면, 이렇게 해서 타인이 (그 시점엔) 공개하기 싫은 사진을 취한 자에 대해 ‘공개 행위’만큼은 처벌할 수 없다.
변협 여성변호사특별위원회 집행위원인 김현아 변호사는 “일본, 미국은 타인의 의사에 반한 유포만으로도 처벌이 되는 법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간단하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이 한 발 달아나면 법도 따라가야 한다. ‘입법’을 누가 하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 분들 요새 이런 저런 일(입법과는 상관없는)로 많이 바쁜 것 같은데, 진짜로 국민을 도와주는 길은 이런 것부터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해결하는 것 아닐까.
P.S- 11일 이 판결 소식을 전한 언론 기사들은 대부분 ‘무죄’라고 했는데 사실 아직 모른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형법 상 명예훼손 등으로 공소장을 변경한다면 모를 일이다. 법이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추지 못한 건데, 엄마의 나체사진을 그 딸에게 악의적으로 보낸 서씨 같은 사람에게 ‘무죄’라는 표현은 ‘상식적으로’ 좀 아니지 않는가. 언론은 언론이지,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경찰도 아니니까.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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