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관 울렸던 사재혁, 국민적 영웅의 허무한 말로(末路)

전병관 울렸던 사재혁, 국민적 영웅의 허무한 말로(末路)

기사승인 2016-01-20 13:39:55
KBS 화면 캡처

"잘못 휘두른 주먹에…금메달리스트·투혼의 아이콘에서 감옥行 걱정 처지로 추락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재혁이가 해낼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고 영광스럽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사재혁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캡처 화면), KBS 역도 해설을 맡은 전병관(현 대한역도연맹 선수위원장)은 말을 더듬거릴 정도로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방송 해설 중이라는 것도 순간 잊어버린 듯 “우리 재혁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는 캐스터가 전병관과 사재혁이 각별한 사이라고 소개한 후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라고 물어보자 “심장이 두근거려서 말을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사재혁(31)은 한국 역도의 ‘새로운 영웅’이었다. 전병관에 이어 16년 만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다. 2차 시기 용상 203kg을 들어올리며 1위 자리에 오르는 순간을, 바벨을 내려놓은 사재혁이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이야!”하며 박력있게 자축하는 모습을 전병관을 비롯해 많은 역도인들은 잊지 못한다.

2연속 금메달에 도전한 2012년 런던올림픽. 사재혁은 인상 2차 시기 162kg에 도전하다 아찔한 부상을 당했다. 바벨이 뒤로 넘어가는데도 놓지 않고 버티다 팔꿈치가 꺾여 버린 것이다. 사재혁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많은 이들이 사재혁의 현역 생활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수차례의 수술, 외롭고 지겨운 재활을 보란 듯이 이겨냈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빠져 나온 것이다. 넘어질 순 있어도 도전은 계속된다는 걸 보여준 그에게 “역시 사재혁”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영웅의 몰락’은 엉뚱한데서 시작됐다. 혈기를 누르지 못한 게 문제였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폭행’을, 그것도 전병관과 자신에 이어 한국 역도 간판의 대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받는 유망주 후배에게 휘두른 것이다. 피해자는 사재혁보다 10세나 어린 황우만(21)이다.

사재혁은 지난달 31일 오후 11시쯤 춘천시 근화동의 한 호프집에서 술자리에 같이 있던 황우만을 때렸다. 폭행이 처음도 아니었다. 경찰조사 결과 사재혁은 지난해 초 태릉선수촌 합숙 당시 황우만을 때린 적이 있으며, 황우만이 이를 소문내고 다닌다는 이유로 이날 호프집 밖으로 불러내 주먹과 발로 얼굴과 몸통을 또 수차례 때린 것이다.

황우만은 광대뼈 부근이 함몰되는 등 무려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다.

사재혁은 오해를 풀려다 나온 우발적 폭행이라고 주장했지만, 황우만은 애초에 화해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충격을 받은 황우만과 가족들은 사재혁의 사과를 거절하고 처벌을 강력히 원했고, 경찰은 고심 끝에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을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재혁은 빠르면 이번 주 안에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이 발부되면 연금 수령자격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체육인복지사업운영규정에 따라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으면 연금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속 여부에 상관없이 선수생활은 이미 불명예스럽게 끝났다. 대한역도연맹 선수위원회는 지난 4일 사재혁에게 ‘선수 자격정지 10’년의 징계를 내렸다. 우리나라 나이로 31세인 사재혁에겐 사실상 퇴출이다. 사재혁은 2주 안에 할 수 있는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다.

런던올림픽 부상 후 재기 과정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사재혁의 마지막 소망은 이제 영영 이뤄질 수 없게 됐다. 공교롭게도 중징계를 내린 연맹 선수위원회 위원장이 2008년 사재혁이 금메달을 땄을 때 가장 기뻐했던 전병관이다.

국민적 영웅에서 감옥신세를 걱정하게 된 사재혁. 인간 사재혁은 아직 젊지만, 환희와 감동을 준 영웅의 말로(末路)로서는 너무나 허무하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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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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