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진짜!] “연봉 ‘5000만원 인상’이 ‘현실적’”이라는 어느 억대연봉자들

[아~진짜!] “연봉 ‘5000만원 인상’이 ‘현실적’”이라는 어느 억대연봉자들

기사승인 2016-01-21 13:18: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연봉 37%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금액으로 전체 평균을 내보면 5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오래 해봐야’ 40세면 현역 생활이 끝나는, 프로야구 같은 인기 종목의 스포츠 선수가 아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이야기이다.

지난 20일 대한항공 일반 노조는 쟁의 찬·반 투표 중인 조종사 노조를 겨냥해 성명을 냈다. 이들은 “조종사 노조의 쟁의관련 찬반투표는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절박한 생존권 요구가 아닌 조종사 노조의 집행부 명분만을 내세운 것으로 파업 피해를 강요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대한항공은 조종사 노조와의 임금협상이 결렬됐다. 사측과 1.9%의 연봉 인상에 합의한 일반 노조와 달리 조종사 노조는 37%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 vs 37%’

임금협상을 둘러싼 사측과 노조의 수많은 갈등을 목격하고 취재도 해봤지만 이렇게 차이가 큰 건 처음이다. 이러다보니 서울지방노동위원회도 지난 19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임금교섭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받아들인 최근 3년간의 임금인상률을 보자. 그들은 2012년 4.0% 인상에 합의했고, 2013년엔 동결, 2014년엔 3.2%의 인상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10배가 넘는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상률이 “현실적”이라는 그들의 논리가 들어맞으려면 이전까지 받아왔던 연봉이 터무니없이 적었거나, 지난해에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올렸어야 한다.

대한항공 조종사의 평균 연봉은 1억4000만원, 기장급은 1억7000~80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대한항공은 5771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임금이 3.2% 인상됐던 2014년의 4578억 원 손실보다 오히려 폭이 커졌다.

조종사 노조는 사측에 보낸 공문에서 37% 인상 요구의 이유 중 하나로 ‘회사의 수용 가능성’도 언급했는데, 대한항공 관계자는 20일 통화에서 “대체 무슨 수용 가능성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시선을 외부로 돌려봤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항공기 조종사의 2014년 평균 연봉은 1712만엔(한화 약 1억7600만원)이다. 일본 국민의 평균 연봉은 400만엔(약 412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고소득 최상위 수준인 일본 항공기 조종사들은 전체 근로자 평균의 4배가 좀 넘는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최근 자료를 종합해보면 미국 근로자들은 평균 4~5만(4840만~6050만원)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2013년 기준으로 미국 주요 항공사 소속 조종사의 평균 연봉은 13만5000달러(1억6300만원)이다. 이후 대폭 상승이 없었다면 미국 항공기 조종사들의 연봉은 전체 근로자 평균의 3배가 조금 넘거나 조금 안 되는 수준인 셈이다.

국세청이 발간한 ‘2015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전체 근로자 평균 연봉은 3170만원이다. 국내항공기 조종사 평균 연봉 수준이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비현실적’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다.

물론 국가별 항공사마다 평균 비행시간, 복지혜택 등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것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 싶어 국내의 전반적인 경제 환경을 살펴봤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임금조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임금협상이 타결된 기업들의 평균 임금인상률(통상임금 기준)은 5.0%였다. 지난해 12월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0.7% 올랐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ECA인터내셔널의 ‘2015/16 임금추세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실질임금은 2015년에 평균 1.5% 인상된 뒤 올해에는 1.7%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으로는 각각 5.0% 및 5.1%의 인상률이다. 예상 실질 인상률 전 세계 1위는 베트남으로 7%이다.

결국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 항공사나 LCC(저가 항공사)의 조종사 고액 스카우트 바람을 의식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조 관계자도 20일 통화에서 “(중국 항공사 등의) 제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종사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선 이 정도의 연봉 인상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A사 소속의 직원이 돈을 더 많이 주는 B사를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이유로 B사에 가지는 않으면서 A사에 “B사만큼 안 주면 일 안하겠다”고 하는 논리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파업몰이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운항직종 외 객실·정비·운송·예약·판매 등 20여개의 직종에 대한 배려는 전무하다. 2005년 조종사노조 파업으로 200편 이상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고 조종사노조는 국민적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귀족노조로 자리매김했다. 전직종이 아픔을 감수해야 했던 과거의 행위를 인정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일반노조의 호소가 단순히 자신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이들에 대한 시기, 반발심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사방팔방 둘러봐도 알 수 없는 연봉 37% 인상 요구의 근거. 그것을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직접 제시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현재는 비현실적”이라는 막연한 외침이 아닌 객관적 근거 말이다.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다. 제시하지 못한다면 ‘귀족노조’ 혹은 ‘금수저 노조’라는, 구분도 무의미한 눈초리만이 기다리지 않을까.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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