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봉 기자▶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 속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재벌가의 이야기인데요. 드라마 속 재벌 2세들은 아버지의 회사를 이어받는 데 있어 별 문제가 없지만, 현실 속 재벌 2세들은 그렇지 않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롯데고요. 그래서 오늘 전 국민의 수다거리가 된 롯데家 형제간의 진흙탕 싸움을 짚어보고, 다른 재벌 기업들의 경우는 어떤지 살펴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네. 며칠 전에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이 실패로 끝났어요. 일본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동생 신동빈 회장 이사직 해임 안이 부결된 것인데요. 관련 소식부터 전해주시죠.
조규봉 기자▶ 네. 3월 6일이었죠.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가 도쿄 신주쿠 일본 롯데 본사에서 열렸는데요. 이번 주총은 형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총 소집 요구를, 신동빈 회장 측이 예상보다 빨리 받아들인 겁니다. 그 이유는 한, 일 롯데 경영권을 쥐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 지분을 과반수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신동주 전 부회장으로서는 사활을 건 싸움일 텐데, 어떤 준비를 했나요?
조규봉 기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승리를 위해 27.8% 지분을 가진 종업원 지주회에 1인당 25억 원 상당의 주식 분배와 이익 실현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죠.
김민희 아나운서▷ 공약을 지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이군요.
조규봉 기자▶ 네. 그렇죠. 30분 만에 끝난 주총에서 신동빈 회장 해임 안 등 4건의 안건이 모두 부결됐습니다. 물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죠. 하지만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다시 확인했다며,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6월 정기 주주총회가 남아있고요. 신동주 전 부회장도 그 날을 기약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누가 승리를 거머쥐든, 그간 진흙탕 싸움을 벌인 롯데의 이미지 회복부터 책임져야 하겠죠. 지난해부터 이어진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 내용을 한 번 정리해 볼게요. 거의 막장드라마 한 편을 찍었죠?
조규봉 기자▶ 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죠. 롯데 신동주, 신동빈. 두 형제의 경영권 싸움으로 신격호 회장은 치매 논란에 시달렸고, 롯데는 일본기업 논란에 시달려야 했으니까요. 일단 싸움의 시작은 2015년 7월 16일. 동생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 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롯데 홀딩스를 방문. 동생 신동빈 회장 등 일본 롯데 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시켰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동생이 회장 자리에 오르자, 형이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직접 동생을 끌어내린 것인데요.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 있을 동생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조규봉 기자▶ 그럼요. 바로 긴급 이사회 소집해, 이사 해임을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무효행위로 규정했고요. 아버지인 신격호 대표이사 회장을 해임시켰습니다. 그러자 며칠 후에는 형제의 친모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가 한국에 왔고요. 그 후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시서를 공개하기도 했죠.
김민희 아나운서▷ 어머니까지 한국에 모여 가족회의를 했지만, 화해를 시킨다거나, 특별한 방책을 내어놓지는 못했던 거네요.
조규봉 기자▶ 네.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8월 1일.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는 일본으로 출국했고요. 다음 날,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영상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차남인 신동빈을 지지하지 않으며, 그를 한국 롯데 회장과 롯데 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적 없다는 것이었죠.
김민희 아나운서▷ 맞아요. 그렇게 되면서 우리 국민들의 분노도 커졌죠.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는 말이 돌면서 롯데마트, 백화점 등에는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기업 이미지 역시 땅에 떨어졌고요.
조규봉 기자▶ 네. 다급해진 신동빈 회장이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는데요. 호텔롯데의 일본 지분율 축소, 순환 출자 80% 해소, 지주회사 전환 등을 약속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대응에 있어서는 형보다 동생이 한 수 위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인지 그 후에 이어진 첫 번째 주주총회 결과 역시 동생이 승리했죠?
조규봉 기자▶ 네. 2015년 8월 17일 열린 일본 롯데 홀딩스 주주총회 결과, 기업 경영지도 체제와 사회규범 준수 등 상정 안건들이 원안대로 통과되면서,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후 열린 호텔 롯데 비공개 임시 주주총회에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은 호텔 롯데 등기이사에서 해임되었고요. 한국 롯데 계열사의 모든 등기이사 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반격을 시작한 동생이 형을 끌어내리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형의 편을 들었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어요.
조규봉 기자▶ 그럼요. 9월 24일에 신격호 회장이 위임장을 작성했고요. 제 2 롯데월드까지 직접 방문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하지만 동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죠?
조규봉 기자▶ 네. 신동빈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서요. 2차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형과 아버지의 계속되는 발언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갈 길만 가겠다는 거군요. 실제로 그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잖아요.
조규봉 기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2016년 2월 12일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 홀딩스 주주총회 소집 요구 기자회견을 열어 이사 전원의 해임을 요청했지만요. 결국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제안한 의안 모두가 부결되었으니까요.
김민희 아나운서▷ 경영권을 두고 이렇게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인 기업은 전례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모든 재벌 기업들이 롯데처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건 아니죠?
조규봉 기자▶ 네. 삼성의 경우도 살펴볼게요. 이제 5월이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병석에 누운 지 만 2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도 2년이 다 되었죠. 물론 경영승계 작업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롯데처럼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지는 않죠.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일단 과감하게 비주력 사업 정리에 나섰습니다. 삼성 계열사 재편 작업 확대 등으로 조직을 개편한 뒤. 지배구조 단순화로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겠다는 거죠.
김민희 아나운서▷ 네. 원래부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맏형 격인 전자와 금융에 집중하겠다는 의견을 내어놓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여러 계열사들을 정리했죠?
조규봉 기자▶ 그렇습니다. 먼저 방산, 화학계열사인 삼성 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 토탈 4개사를 1조 9000억 원에 넘기며 삼성. 한화 빅딜을 성사시켰고요. 작년 10월에는 롯데 그룹에 삼성정밀화학, 삼성비피화학, 삼성에스디아이 케미칼 사업 부문을 3조원에 매각했죠. 또 2000억 원 규모의 삼성물산 주식과 302억 원 규모의 삼성 엔지니어링 자사주를 취득했습니다. 명목은 지난해 연말부터 문제 삼아온 일부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은 이미 0.7% 포인트가 높아져 17.2%가 됐습니다.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에 힘을 실어주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동시에 거둔 것이죠.
그렇다고, 잡음이 없지는 않은데요.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앞으로 경영권 지배나 행사를 위해 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추가로 취득할 계획이 없다고 단언했었거든요. 하지만 삼성SDI가 보유하던 삼성물산 주식 3,000억 원어치를 사들였으니까요. 결국 약속은 깨졌고, 그에 따른 실망감은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김민희 아나운서▷ 봉기자, 모든 기업들이 다 경영권에 있어 약간의 잡음은 내고 있는 건가요? 전혀 문제가 없는 기업은 없나요?
조규봉 기자▶ 있습니다. 바로 LG인데요. 사실 경영권 승계 문제는 기업가와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잖아요. 롯데처럼 승계 과정에서 형제들끼리 다툼이 발생하게 되면, 결국 좋지 못한 여론이 형성되니까요. 하지만 LG그룹은 다릅니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로 기업의 경영권 상속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어 놓았죠.
김민희 아나운서▷ 네. 그러고 보니 LG에서 경영권 관련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지금 LG 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조규봉 기자▶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타계하면서 주변에서는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요.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철회는 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삼촌이 물러나자 자연스레 구자경 회장이 럭키금성 그룹의 제2대 회장이 되었죠. 그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는 구자경 회장이 취임 당시 매출 260억 원이던 그룹을 30조 원 규모로 성장하게 하는 발판이 되었고요.
김민희 아나운서▷ 삼촌과 조카와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해결된 것이군요.
조규봉 기자▶ 네. 그리고 구자경 회장은 70세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고요. 실제로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은퇴를 선언하며, 아들 구본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은 인재양성을 위해 충청도의 천안 연암대학교에서 농업과 장학지원 사업에 힘을 쏟고 있고요. LG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3대에 걸쳐 분쟁 한 번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죠.
김민희 아나운서▷ 그룹 내에서 큰 다툼이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조규봉 기자▶ 그건 LG그룹의 혹독한 후계자 수업 덕분입니다. 다른 기업들이 2세, 3세 자녀들을 입사 후 5~8년 내에 대표를 맡게 하는 것과 달리, LG가의 회장들은 기본적으로 10~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실제로 구자경 회장은 취임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아버지 구인회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고요. 구본무 회장 역시 1975년 입사해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총괄본부장 등을 거쳐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했습니다. 그룹 내 여러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995년에야 회장 자리에 올랐죠.
김민희 아나운서▷ 네. 비결이 있었네요. 오늘 호시탐탐에서는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롯데의 경우, 계속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LG의 경우 잡음이 전혀 없는 매끄러운 승계를 보이고 있죠. 어찌 보면, 내 회사 내가 물려주겠다는 데 왜 난리냐.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이 그렇게 크기까지. 그 뒤에는 기업을 아끼고 사랑해온 소비자,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보다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테고요. 지금까지 호시탐탐이었습니다. ckb@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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