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제약산업도 아이돌을 10여년간 공들여 스타급으로 육성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Entertainment Business)’를 표본 삼아 신약개발 역량을 다져야 합니다. ‘K-Pop’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핵심 ‘콘텐츠’와 ‘아이디어’에 있듯이, 신약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2일 한미약품 본사에서 만난 손지웅 한미약품 R&D 부문 부사장은 “신약개발 성공을 이끌 수 있으려면 제약사가 연구소를 크게 짓고 의료장비를 사들이는 것 등의 인프라 확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핵심 기술’이다”고 밝혔다.
최근 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우리도 한미처럼’을 외치며 신약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국내 제약업계로는 최대 규모인 5조 원대의 당뇨병치료제 기술 이전 계약을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와 맺은데 이어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등 제약사들과도 기술 계약을 체결해 총 8조 원의 기술 수출을 성사시켰다. 이러한 성과로 지난해에는 1조3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한미약품이 혁신신약 개발에 성공하고 글로벌 제약사들에 기술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 무엇일까. 손 부사장은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바로 ‘나 혼자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성공의 방정식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남들 잘 때 안 자고 제일 빠르게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죠. 하지만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의 창의와 혁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약개발을 위해선 기존과 다른 혁신을 위한 생태계 조성과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신약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한 한미의 신약개발 성공 전략은 통했다. 손 부사장은 “무조건 최고가 되기(Be in the best) 위한 목표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한계를 인정하고 글로벌 제약 전문가들, 핵심 연구자들과 함께(Be with the best)한다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수출을 이뤄낸 4∼5개의 신약개발 과정에서 임상의 모든 단계 단계마다 관련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고 글로벌 제약사, CRO 담당자나 관련 전문가들에게 ‘잘못된 점은 없는지’, ‘놓치고 있거나 보완해야 할 연구는 무엇인지’ 등의 수많은 검토 과정을 거쳤다. 이들 조력자들의 도움을 통해 신약개발에 성공에 보다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미약품은 글로벌 CRO와 함께 의논을 거쳐, 그들의 임상개발 경험과 지식을 배웠다. 지난해 결실을 맺은 4∼5개의 신약 기술수출 성과가 결실을 맺 단계 단계마다 질의응답과 심층자료를 검토하는 단계들이 한몫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한정된 재원과 인력으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곧 열린 조직을 통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기술은 물론, 외부의 유망한 물질을 도입하고 함께 개발해 나가는데도 관심이 많다. 또한 회사는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제약분야 R&D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신약개발 경험과 노하우, 자본을 통해 한국의 신약개발 붐을 일으켜 보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는 연구개발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더불어 리더들의 역할이 컸다. 실제 임성기 회장은 ‘한미약품공업주식회사’란 이름으로 1973년 한미약품을 창업한 이후 줄곧 R&D 투자를 강조해 왔으며,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R&D에 투자했다. 그 열매가 지난해 맺혔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미약품의 경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처음부터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는 전략을 수립했다. 개량, 복합신약 등을 통해 캐시카우를 창출해 혁신신약 R&D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혁신의 본질은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세계적 글로벌 제약사들의 연구 인력이 1만여명에 달한다면, 한미는 약 500여명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손 부사장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왔고 빠른 의사결정을 통한 스피드 R&D의 결과”라며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신약후보는 과감하게 포기했다. 글로벌 시장성을 감안한 의료진과 환자, 글로벌 빅파마들의 ‘언멧니즈(Unmet needs,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끊임없이 파고든 결과”라고 강조했다.
사실 한미약품의 이러한 성과가 일회성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손 부사장은 “앞으로도 우리는 경구용 항암신약, 면역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혁신신약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고형암 치료제인 ‘HM95573’를 개발 중이며 비만·당뇨·자가면역질환 등 7개 신약 후보물질 대한 전임상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13일에는 폐암 표적항암제인 ‘올리타정’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올리타정은 우리나라 제약사가 개발한 27번째 신약이다.
다만 정부에 대해서는 혁신 신약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합리적 약가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에서 제약산업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규제’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정부가 경영자 마인드가 되서 직접적인 투자자가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제약산업이 전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혁신신약을 개발한 기업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합리적 약가제도를 실현시켜야 하며 비효율적인 제도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끝으로 그는 “성공한 조직과 닫힌 조직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경청하는 자세’와 ‘열린 마음’에 있다”며 “리더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아닌지 늘 생각해야 한다. 조직 발전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회사 발전을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newsroo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