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음식에 있어서 ‘소금’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소금을 넣지 않으면 싱거워서 먹을 수 없고,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짜게 돼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류중하(54) 근로복지공단 상임감사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직에도 소금과 같이 적절한 긴장감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규정과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조직이 경직돼 원활한 사업추진이 어렵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류 감사의 지론이다.
인터뷰 내내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청렴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그의 얼굴에서 언뜻 보이는 눈빛이 무엇이라도 꿰뚫을 듯 날카로웠다.
류 감사는 언제나 결과로 답하는 ‘능력’ 하나로 묵묵히 최선을 다해왔다. 그는 친박연대 정책기획국장과 새누리당 부대변인, (사)미래전략개발연구소 사무처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하면서 정치, 외교, 사회문화 등 국가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심도있게 고민해왔다.
특히, 근로자의 복지와 건강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있는 그는 해외 사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 柳 감사 '중장기 감사전략' 적극 추진..공단 소속 병원 사상 첫 '흑자'
류 감사가 생각하는 감사추진 방향은 크게 3가지다. ‘정의로운 감사행정’, ‘함께하는 감사행정, ’신뢰받는 감사행정‘ 등이 그것이다. 이는 각각 ▲부정부패에는 지휘고하를 막론한 일벌백계 ▲청렴하고 깨끗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전사적 차원의 노력 ▲잘못된 조직문화와 불합리한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14년 1월 15일 취임한 류중하 감사는 ‘기본이 바로 선 깨끗하고 투명한 조직’을 구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위행위 발생 예방을 위한 감찰업무 전담 조직인 ‘특명감찰TF팀’을 신설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감사 전략과 기획업무 싱크탱크인 ‘감사전략TF팀’도 신설했다. 정보수집과 분석, 감찰기능, 청렴윤리업무를 개별적으로 담당하던 임시조직들은 통합해 ‘청렴윤리부’로 확대 개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국민권익위가 올해 2월 발표한 부패방지시책평가에서 3년 연속 최우수기관에 선정된 것. 이뿐만 아니라 감사원에서 시행하는 자체감사 활동심사에서 ‘우수기관’, ‘우수등급’으로 평가되는 등 성과가 이어지자 조직 내에서도 그의 '개혁 드라이브'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류 감사만의 핵심전략인 ‘중장기 감사전략’ 수립도 공단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제가 부임해보니 공단 설립 20년이 지나도록 중장기 감사전략이 없더군요. 감사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이 없으니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감사계획을 수립해 진행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전략목표를 설정하는 등 중장기 감사전략을 수립하게 됐습니다.”
류 감사는 중장기 감사전략 수립과 더불어 ‘고객이 신뢰하는 깨끗하고 투명한 근로복지공단 구현’을 감사 미션으로 확정하는 한편, ‘신뢰받는 공단 구현을 위한 FIRST 감사 서비스 제공’을 미래비전으로 정했다. 감사 추진 방향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나침판’이 만들어 진 것이다.
감사기능의 강화는 공단 소속 10개 병원에 대한 방만 경영을 바로잡는 효과도 발휘했다. 이 병원들은 류 감사가 추진한 ‘의료분야 경영지원 감사’를 계기로 설립이후 처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감사를 통해 병원이 합리적 경영을 하도록 했습니다. 우선 의약품 수급관리 실태 감사를 실시해 의약품 재고관리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또 산업보건사업 특정감사를 통해서는 해당 분야의 관리기준을 마련했고, 통합건강검진 시스템 등 전산시스템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류 감사는 감사의 패러다임이 사후 적발 방식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경영자의 의사결정 단계부터 감사기능이 함께 해야만 실수나 오류를 줄이고 미래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류 감사는 취임 후 일상감사를 크게 강화했다. 일상감사를 전 소속기관으로 확대하고 감사규정을 개선해 신청에 의한 일상감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지난 2014년 773건이던 공단 일상감사 건수는 지난해 1260건으로 대폭 증가했고 실적도 전년대비 63%나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 감사 역량 제고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받는 감사실'부터 만드는 것
"처음 공단에 와서 느낀 것은 직원들이 자신들이 몸담은 조직에 대해 자긍심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공단 업무 특성상, 근무 연한이 길어질수록 업무 부담과 승진 적체로 인해 불만이 쌓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류 감사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직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적극 나섰다. 현장경영활동을 통해 주기적으로 소속기관을 방문하고 공공기관 직원으로서의 책임과 공단의 장점을 알렸다.
또한 매년 초 ‘직원 여러분들께 드리는 영상메시지’를 통해 감사 철학과 중점 추진 사항을 직원들과 공유하는 한편, 피감기관을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과 건의사항도 적극 수렴하고 있다.
이와 함께 류 감사는 직원들이 감사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 ‘신뢰 받지 못한다면 그 어떤 감사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백약이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취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일부 직원들은 감사실을 불신했고, 심지어는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과거의 감사가 권위적·고압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생겨난 부작용이었다.
직원들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열쇠는 ‘겸손’과 ‘배려’였다. 류 감사는 "감사실이 먼저 배려하고 겸손한 태도로 직원들을 대해 신뢰를 받는 것이 곧 감사역량을 높이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먼저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직원들이 개인적인 비리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반드시 신상필벌(信賞必罰) 합니다. 절대 용납되선 안됩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 관행적·제도적으로 실수한 부분에 대해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면 감사실은 신뢰받을 수 없습니다. 청렴이 단지 형식으로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로 퍼져나가기 위해선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감사의 수용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 산재 근로자들에 대한 재활 복지, 선진국가 도약 선결과제
한편, 류 감사가 복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장애를 지닌 둘째 딸에 대한 애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둘째 딸은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사실을 류 감사 내외가 처음 알게 된 것은 딸이 3살 때. 당시 우리나라에 IMF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수술을 하려면 호주에서 인공와우를 수입해 와야 했지만 원화 가치 폭락으로 가격이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쌌다. 더구나 당시만 하더라도 인공와우 수술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류 감사는 하나밖에 없는 귀엽고 예쁜 딸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수술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백방으로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의 아내는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를 직접 찾아 연락하며 그들의 경험을 배웠다.
다행히 그의 딸은 늦지 않은 시기에 인공와우 수술을 잘 끝냈고, 현재는 일상에 큰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수술 후 언어를 가르쳐주는 재활기관이 없었던 탓에, 그의 딸은 의사소통에 있어 일반인의 60% 수준에 머무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직도 류 감사의 마음 한구석에는 딸에 대해 미안함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아픈 경험이 있기에 류 감사는 재활 분야에 대한 제도 개선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재활을 통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 류 감사는 그것이 곧 선진 국가라고 믿는다.
“앞으로는 재활이 가장 중요해 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산재를 당한 근로자들을 잘 치료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재활을 통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정착돼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류중하 상임감사>
-1963년 1월 30일
-서울사대부고 졸업
-서경대 행정학과 졸업
-한성대 부동산학 석사
-(전)친박연대 정책기획국장
-(전)새누리당 부대변인
-現 근로복지공단 상임감사
유경표 기자 scoop@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