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 변호사는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부패문화 청산 공로자 시상식’에서 국회사무총장 공로장을 수상했다. 평소 법조인으로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부패문화 청산에 힘을 보태온 박 변호사는 이날 “기업과 단체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선진 청렴문화가 조성되는 데 앞장서겠다”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최연소 파트너변호사 기록을 갖고 있는 박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적극 실천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단지 의뢰인의 재력에 따라 사건을 수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의뢰인이 찾아오면 무보수 또는 소액의 보수만 받고 봉사의 자세로 의뢰인의 눈과 귀가 돼 변론을 수행하고 있다.
한 번은 사기죄로 법정구속된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는데, 당시 피고인의 아들이 고교 3학년 재학 중이라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절망에 빠져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다고. 이에 박 변호사는 자신의 임무가 피고인의 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까지 미친다고 여기고 자진해서 피고인 아들의 멘토가 돼 줬다고 한다.
지난 7일 부산 거제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정인에서 만난 박 변호사는 “평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소임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역할에도 매진하고 있다. 어떤 사건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고, 끊임없는 법리연구와 다양한 증거방법을 연구함으로써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변호사는 자신보다 경력이 부족한 변호사나 심지어 직원들에게도 사건처리에 도움이 된다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충실한 변론을 이끌고 있다.
“소액 사건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변론을 준비한다. 모든 서면을 의뢰 당사자에게 미리 보내 검토를 받고 제출함으로써 의뢰자 의사가 올바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근 변호사 업계가 치열한 양상을 보인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은 내가 가진 실력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고객(의뢰인)이 인정하는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것을 가지려면 우선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의뢰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매력은 개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짓거나 일반화시킬 순 없다.
-최연소 파트너변호사로서 실력 있는 변호사로 정평이 나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최연소 파트너변호사가 돼서 회사에서 많은 매출을 달성하는 편이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항상 검사, 판사, 상대방 변호사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를 굉장히 고민한다. 여기에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유년시절 굉장히 부유하게도 살아보고, 돌이키기 어려운 경제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 외부 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렵게 공부했다. 이렇게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인지 다소 어려운 사건을 수임하더라도 의뢰인의 마음에 보다 쉽게 다가서고 감동을 선사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자 경쟁력인 것 같다.
-주로 어떤 의뢰인이 많은가.
▷변호사로서 어떤 의뢰인을 만나는지도 무척 중요하다. 운이 좋게도 8년차 변호사가 되면서 부산에 유망기업과 인연이 닿게 됐고, 그 기업인들이 소개한 지인들도 많이 알게 됐다. 최근에는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많은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평균 하루에 10건 정도 상담을 진행하는데, 주로 승소할 수 있는 사건을 맡으려고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패소하게 되면 흥이 나지 않는다. 이왕이면 이길 수 있는 사건, 억울함을 해소시킬 수 있는 사건을 맡는 게 변호사로서 가장 큰 역할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것 같다.
-평소 사회정의 실현과 인권옹호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마치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연수원 수료와 동시에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내가 받았던 도움을 우리사회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가정환경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학생들과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결손가정, 불우가정 아이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후원하고 있다. 작은 후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연간 1000만원 정도 기부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형편이 어려운 여학생들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사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생리대를 후원하기도 했다.
-훗날 어떤 법조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세 아이의 아빠다. 먼 훗날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만 들으면 좋겠다(웃음).
양병하 기자 md594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