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 뒤 학교 인근 원룸을 구해 사는 고려대 4학년 이모 씨(25)는 취업 준비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 시간제 아르바이트 2개를 하고 있다. 이 씨는 “생활비나 학습비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월세 부담이 워낙 크다. 노숙을 할 수도 없고 월세를 벌기 위해 월세방에 살고 있는 셈”이라고 하소연한다. 이 씨가 잠만 자다시피 하는 23㎡(6.9평)짜리 원룸은 보증금 11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관리비나 전기세 등으로 매달 10만 원가량이 추가로 든다. 이 씨는 “고학년이 기숙사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고 반지하에 살다가 습기 때문에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 원룸으로 들어왔는데, 방음 설비나 구조 등이 취약하다. 비싸도 대안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산다”고 말했다.
가격 부담이 크고, 환경이 열악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국 대학 기숙사 수용률이 20% 수준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길거리로 쏟아진 수많은 대학생들이 ‘주거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선호도 높은 대학가 주변은 프리미엄이 붙어 부르는 대로 돈을 쥐어줘야 한다. 비싼 월세는 경제활동이 미약한 대학생들에게 직접적 타격으로 다가온다. 아르바이트, 과외 등 돈이 될 만한 일에 시간을 할애하다보면 기본 학습은 물론 취업 준비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다. 민간시장 활용 등 실효성 있는 청년 주거 문제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기숙사 신축마저 가로막혀… “방 같지도 않은 방 전전”
월평균 20만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과 시설 관리 지침, 안전한 여건 등을 갖춘 기숙사는 매년 높은 지원율을 기록한다. 더불어 탈락률도 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10월 공시한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 자료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186개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21%에 머물렀다. 재학생 10명 중 2명만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리는 서울 소재 54개 대학의 경우 평균 수용률이 11%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수천억원대의 적립금을 쌓아놓은 대학들이 학생을 위한 시설 확충에는 인색하다는 볼멘소리가 잇따랐다. 정부의 ‘사립대 기숙사 신·증축 지원사업’은 최대 90%에 달하는 사업비를 지원했지만, 기숙사비 최소 책정 등 공익적 운영에 따른 제약이 있다는 이유로 저조한 신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등록금에 주거비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중고’를 떠안은 학생들의 원성이 커지자 기숙사 건립을 추진하는 대학이 최근 5년간 늘긴 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가로막혀 난항을 겪는다.
고려대는 학교용지 내에 1100명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 신축을 진행하고 있지만 5년째 표류 중이다. 주민들은 임대 수입 감소와 녹지 보존 등을 이유로 맞서고 있다. 고려대 학생들은 구청 피케팅 활동,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 등을 벌이며 “대학생 ‘원룸 푸어’들을 위해 제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다. 이밖에도 사학진흥재단이 짓는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를 비롯해 총신대와 홍익대, 동덕여대, 한양대 등 서울 시내에서만 모두 6곳에서 지역민과의 갈등이 일면서 기숙사 건립은 지연되거나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다.
기숙사가 외면한 대다수 학생들은 원룸이나 고시원 등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수요가 많은 대학 근처의 경우 웬만한 역세권 못지않은 임차료가 형성돼 있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등 서울 시내 대학가 10곳의 평균 월세는 49만원, 보증금은 1378만원으로 조사됐다. 기숙사비 2배를 웃도는 금액이다. 홍익대 2학년 최모 씨(21)는 “‘지옥’로 불리는 지하방, 옥탑방의 임대료조차 과하게 매겨진 사례가 적지 않다보니 쾌적한 환경을 바라는 건 사치가 됐다. 내 이력이 아르바이트로만 덧칠되는 기분이다. 방 같지도 않은 방을 전전하는 이 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 체감도 낮은 공공정책 물량… “민간 연계 시급”
정부와 지자체는 이 같은 ‘주거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청년 임대주택, 공공기숙사 공급 등을 시행하고 있다. 주로 4인 가구 위주로 펼쳐지던 주거복지 정책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증한 1인 가구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방 구하기’ 대란에 직면한 대학생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진단이 나온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들이 직접 꾸린 민달팽이 유니온의 이한솔 사무처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정책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 정책 대상자로서 대학생 등 청년은 여전히 수혜 비중이 턱없이 적다. 공공의 영역에서 공급 물량을 크게 확대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 임대주택 확충과 함께 규제를 통한 저가 민간 임대시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주택 공급의 대안적 모델로 ‘달팽이집’을 내놨다.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사회투자기금 대출 등으로 보증부 월세 또는 전세 집을 마련한 뒤 이를 다시 저렴하게 임대했다. 2인 1실의 경우 보증금 60만원에 월 임대료는 23만원이며, 임차인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수도권에서 운영 중인 7채의 달팽이집에서 현재 130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학가 주변의 공실(空室) 등을 구조변경 해 활용하는 수요자 지원책이 시급한데 그 역할을 할 주체가 없다. 대학이 나서 학생 주거 안정에 대한 계획을 잡고, 그 계획을 집행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2~3년이 소요되는 기숙사 건립보다 인근 주택시장 상황을 감안한 지원 정책이 갖는 실효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주거 빈곤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의 실태, 규모 등에 대한 조사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상업 및 창업에 치우친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거시설로서 한집 단위가 아닌 몇 곳을 묶어 적용하면 공급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대학가 주변만 해도 노후화 된 건물이 많은데, 임대업을 하는 주민들과 조합을 만들거나 공동사업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 리모델링을 하고 이익을 배분하면 공급 물량은 늘어나고 주거공간의 질은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