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은 세상으로 출바알∼!!!”
여름을 재촉하는 장맛비가 시원스럽게 내렸던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양천구청 대강당인 양천홀에는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헌신하고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퇴임공무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2018 하반기 공로연수식’이 열렸다. 이날 연수식은 대부분 1958년 출생인 그들 앞에 펼쳐질 새로운 인생을 축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가족과 후배 공직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퇴임(공로연수)공무원들이 후배공무원과 가족에게 전하는 영상 메시지, 공로패 수여 및 격려금 전달, 축하공연과 기념촬영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후배들이 실내 소등 후 LED 장미꽃을 들고 ‘이별 아닌 이별’을 합창할 때는 너 나 없이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퇴임공무원 기진구 신정1동주민센터 팀장은 “30년이란 세월이 정말 순간처럼 지나갔다. 양천구가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퇴직하게 되어 뿌듯하다.”며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동료 직원들과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30년 이상의 세월을 양천구와 서울시의 발전에 헌신해 오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공직생활에서 보여준 열정 그대로 퇴직 후에도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기대한다."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양천구는 2018 상반기에 18명 하반기에 22명을 포함해 총 40명이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올해 퇴임하는 ‘58년생 공무원은 본청과 사업소를 합해 340명, 소방공무원은 대략 120명 정도라고 밝혔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물러나는 전국의 광역·기초 자치단체를 포함한 지방공무원은 올해 7천341명으로 추정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한 2014년부터 매년 4천 5백 명에서 4천 8백 명 정도가 정년을 맞았다. 정년 퇴직자가 1천 527명에 불과했던 2013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3배를 훌쩍 뛰어넘는 숫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중추를 담당했던 ‘58년 개띠 공직자’들의 은퇴가 이어지면서 공무원 사회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60세 정년이 법제화되기 전 일반기업의 정년은 보통 55∼56세였기 때문에 민간영역에서 일했던 동갑내기들은 이미 4∼5년 전에 현업에서 물러났다.
‘58년 개띠 그들은 누구?’
2018년 무술년(戊戌年)은 ‘황금 개의 해’로 불린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무술년인 1958년에 태어난 이들이 올해 회갑(回甲)을 맞았다. 누구나 친숙하게 한번 쯤 불러봤을 ‘58년 개띠’는 전쟁의 상처가 수습되고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에 맞춰 출생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에 태어난 1차 베이비부머들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700여만 명을 일컫는다.
갑자기 불어난 인구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존력이 강해지면서 ‘58년 개띠’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실제로 1958년은 한 해 출생 인구가 90만 명대로 증가한 베이비붐 시대의 중심에 속한다. 58년생들은 빽빽한 ‘콩나물 교실’에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2부제 혹은 3부제로 공부했다. 유년 시절 외빈 방한이나 국가 행사가 열릴 때는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환영행사에 수시로 동원되기도 했다.
서울에서는 소위 ‘뺑뺑이’로 불리는 무시험 고교 입학제가 갑작스럽게 실시되면서 혼동의 시기를 겪었다. 무소불위의 유신체재 속에서 이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군 생활 중 영원 할 것 같은 유신체제가 무너지는 ‘10.26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접했다. ‘12.12 사태’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으로 혹은 진압군으로 격변의 현장 중심에 있었다. 또한 5공화국을 몰아낸 ‘6월 항쟁’ 시에는 ‘넥타이부대’로 참여해 민주화를 이루어 내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IMF 외환 위기에는 아이들 돌 반지까지 모두 내놓았고 조기퇴직과 정리해고 등 불안한 미래를 감내하며 살아왔다. 어렵고 변화가 많던 시절이었지만 그만큼 기회가 많았던 세대이기도 했다. 이들의 청년기는 대한민국 산업이 고도성장기여서 취업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 실감날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못 보던 고층건물이 서 있고 고가도로가 생기고 대규모 아파트단지도 우후죽순으로 건설되었다. 고속도로와 지하철 개통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비만을 걱정할 정도로 식단도 다양하고 풍성해졌다. 경제에 밝은 개띠들은 몇 번 집을 옮기면서 손쉽게 큰집을 마련하기도 했다.
가난한 시대를 지내오면서 힘겹게 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았던 세대,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몸으로 익힌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세대가 58년 개띠들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은퇴와 더불어 새로운 ‘개띠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는 58년 개띠의 은퇴에 대해 “2018년이 꼭 절반 지나간 지금, 환갑을 맞은 많은 수의 58년생들이 사회에 밀물처럼 유입되었다가 동시에 빠져나가고 있다. 비교적 학력이 높고 부지런한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부동산시장, 레저 및 재취업, 창업 시장에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앞으로 개띠들은?’
사회적 의무와 부담에서 홀가분해진 개띠들은 향후 새로운 인생 설계에 분주하다. 꽃중년, 신중년으로 불리는 이들의 인생 2모작은 대략 4가지 방향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그 동안 사회의 주역으로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생업에 매달려 어쩔 수 없이 소홀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 투자이다.
백세시대에 대비한 건강과 취미생활 등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설계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재취업과 창업을 위한 배움과 도전이다.
100세 시대에 60세는 아직 청춘이다. 평생 일이 몸에 밴 이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재취업과 창업을 통해 사회구성원으로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국가기관과 민간기관에서 운영하는 교육센터에는 은퇴자들로 차고 넘친다. 이들은 또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내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 캠핑카도 구입하고 다양한 여행계획을 세우는 등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노후생활을 즐기려한다.
네 번째는 사회봉사활동이다.
평생을 국가와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은퇴자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과 봉사를 통해 플러스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58년 개띠를 비롯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지만 또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리본(Re-born)세대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세대”가 아닌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은 “깬 세대”이다.
정년을 맞아 은퇴한 개띠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현업에서 맹활약하는 58년 개띠들도 많다.
정계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이상민 의원, 민병두의원, 박남춘 의원, 남인순 의원,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심재철 의원, 박순자 의원, 경대수 의원,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 정병국 의원, 김성식 의원, 민주평화당 김광수 의원, 무소속 이정현 의원,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포진해 있다. 경영인으로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이제중 고려아연 사장,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박종석 LG이노텍 대표이사 등이 1958년생이고 연예계에는 배우 조형기, 김혜옥, 강남길, MC 임백천, 가수 설운도, 최헌, 홍서범 개그맨으로는 심형래, 최병서 씨 등이 있다.
곽경근 기자 kkkwak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