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과 탄핵 부결

2020 트럼프 대통령 국정연설과 탄핵 부결

기사승인 2020-02-06 09:45:2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의회에서 진행한 새해 국정연설 (State of the Union Address·연두교서)을 통해 집권 4년 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이번 국정연설에서 관심을 모았던 북한 관련 언급은 취임 후 처음으로 빠졌다. 대신 11월 대선을 염두에 두고 연설 대부분을 경제를 비롯한 자신의 업적과 성과를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우선 3년 전 취임 당시 위대한 미국의 귀환을 약속했고, 믿을 수 없는 결과를 이뤄냈다고 밝혔다. 자신의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경제적 성공을 통해 미국 내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고 소득은 증가했으며,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이고, 주요 기업들이 미국을 떠나지 않고, 생산시설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주요 국가들과 호혜적인 무역 합의를 이뤘다고 밝히면서, 특히 중국과 신기원을 이룬 새로운 무역 합의에 서명해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미국산 생산품의 방대한 시장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과 관련해서 자신의 정부가 ‘IS’ 수괴를 제거하고 테러와 싸우는 한편 중동평화 계획을 확립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란의 테러리스트 솔레이마니 소장의 제거 작전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반드시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중동에서 오래 지속된 전쟁을 끝내고 미군 병사들을 고국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그는 중남미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에 대항하는 59개국 외교 연합국을 이끌고 있다고 말하면서 마두로는 불법적인 통치자이며, 국민을 잔혹하게 대하는 폭군이지만 그의 폭정은 박살 나고 부서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기록적인 2조2천억 달러를 미군에 투자했고, 미군은 모두 미국 내에서 생산된 최신예 무기와 군사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새로운 부대인 ‘우주군’을 창설했다면서, 미국은 화성에 깃발을 꽂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마침내 동맹국들이 그들의 공평한 몫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나토(NATO)회원국들로부터 4천억 달러 이상의 분담금을 지불하게 했고, 최소한의 의무를 충족하는 동맹국의 수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자평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정책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특히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복지제도가 불법 이주자들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무료 의료보험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화시켜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미국 남부 국경을 수호하는 데에도 전례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상들이 만든 지구상 가장 위대한 나라를, 우리가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개척자인 미국의 위대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미국의 시대, 미국의 서사시, 미국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미국 특유의 개척정신을 강조하면서 국정연설을 마무리했다.

특별히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화제를 모았던 점은 두 가지 측면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가 미국의 세 번째 탄핵대상이 된 대통령이란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 아웃사이더 대통령이란 점이다.

이번 국정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최종 결정할 상원 표결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그리고 그는 역대 미국의 어느 대통령들보다도 반대진영과의 적대적인 정치적 대립을 극대화시킨 대통령이다. 그래서인지 민주당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연설 내내 거의 비웃음과 조롱으로 그의 국정연설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탄핵을 주도한 펠로시 민주당 대표가 내민 악수 요청을 무시하고 거절하며 외면했다. 이에 약이 오른 민주당 펠로시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마친 후 의회 단상을 향하는 바로 그 순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문을 높이 들고서 보란 듯이 네 차례나 북북 찢어버렸다. 이 장면은 2020년 새해 미국 정치가 얼마나 타락의 포퓰리즘으로 추락하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이 있은 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미국 상원에서 부결됐다.

상원은 5일 오후 4시 (현지시각) 본회의를 열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의 핵심 사유인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권력 남용’과 ‘의회 업무방해’ 혐의를 각각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권력 남용 혐의는 찬성 48 대 반대 52, 의회 업무방해 혐의는 찬성 47 대 반대 53으로 각각 부결됐다. 탄핵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상원 전체 100명 가운데 3분의 2인 67명의 찬성이 필요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번 상원의 탄핵 부결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 의석 구조상, 탄핵안이 인용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이번 표결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낸 밋 롬니 상원의원이 탄핵안에 공화당 소속으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는 미국 탄핵 사상 소속정당의 이해나 뜻에 반해서 투표한 첫 상원의원으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를 맹비난하겠지만, 소속정당의 이익보다 국민과 국가, 자신의 신념과 판단에 더 충실한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상원의 탄핵 부결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은 종결됐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해 9월 24일 탄핵 조사 개시를 공식 발표한 지 134일 만이자, 지난해 12월 18일 하원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가결한 지 49일 만이다. 이제 미국 정치는 ‘포스트 탄핵’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탄핵 추진 과정에서 미국 전체가 두 동강 난 극심한 분열과 대립상은 대선 국면에서도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서막을 알리는 것이 바로 전날 국정연설 직후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문을 찢어버린 민주당 펠로시 하원의장에 대한 ‘불신임 카드’이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The Hill)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민주당 비공개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연설을 ‘거짓투성이 연설문’이라고 재차 폄하하면서 “그(트럼프 대통령)가 진실을 조각냈기 때문에 나도 그의 연설문을 조각낸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연설문을 찢을 작정으로 가진 않았다. 그가 나와 악수를 안 해도 신경쓰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연설문을 속독하고 거짓말투성이라는 걸 알았다. 일단 지켜보려 했지만 4분의 1쯤 지났을 때 그가 엉터리 판매상처럼 속이려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백악관과 공화당은 펠로시 의장의 행동을 맹비난했다. 팬스 부통령은 폭스뉴스에 나와 "나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설문을 찢고 있는지 헌법을 찢고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고 비판했고,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기자들에게 "미국은 구제 불능의 어린애가 국정연설을 갈기갈기 찢는 것을 목도했다"며 이번 일은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발작’이라고 자주 비난하던 장본인인 “펠로시 하원의장이 분노발작 증세가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도 트위터를 통해 “연설문을 갈가리 찢은 낸시 펠로시의 악랄한 당파적 행동에 역겨움과 모욕감을 느낀다"면서 그가 불신임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향후 민주, 공화 양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명운을 건 대선정국에서 이처럼 이전에 미국 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극한적 대립과 갈등 양상을 노출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반대자를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품격의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최루탄과 몸싸움으로 얼룩진 어느 국회의 모습과 비슷한 장면과 언사(言辭)들이 트럼프 시대 미국 정치의 전형(典型)으로 자리잡혀 가고 있는 것만 같아 보여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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