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김모(13)양은 지난 12일 열린 학교 체육대회에서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반 티’(반 단체 티셔츠)에 시선을 뺏겼다. 김양은 “2학년 중 한 반이 단체로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단체복을 입었다”라며 “나중에야 그 옷이 ‘야쿠자 반 티’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긴 시간 중단됐던 중·고등학교 체육대회가 다시 속속 열리면서 반마다 맞춘 단체복이 눈길을 끈다. 반 친구들과의 단합을 보여주는 상징인 ‘반 티’를 독특한 콘셉트로 맞추는 게 일종의 즐거운 놀이가 된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중·고등학교 체육대회에 ‘야쿠자’ ‘조폭’ ‘문신 스티커’ 등 범죄자 콘셉트의 단체복이 인기를 끌어 논란이다. 학생들이 범죄자 옷을 입는 것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반발이 나온다. 포털 사이트에서 ‘반 티’를 검색하면 다양한 캐릭터 복장이나 운동복은 물론, 야쿠자나 조폭, 죄수복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야쿠자 반티’만 검색해도 1170개에 달하는 게시물이 쏟아진다.
학생들이 범죄자 콘셉트의 단체복을 선호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김양은 “다른 반 티보다 화려하고 예뻤다. 눈길을 확 사로 잡더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와 SNS 등에선 야쿠자, 조폭 반 티를 두고 “예쁘다” “독특하다” “표현의 자유”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학생들이 야쿠자, 조폭 티셔츠만 입는 게 아니다. SNS와 각종 커뮤니티엔 야쿠자, 조폭 반 티를 입고 야구방망이를 든 학생들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엔 현실감을 더하려고 문신 팔토시까지 착용한다고 한다. 일부 온라인 쇼핑몰들도 해당 복장을 소개하며 야구방망이나 각목 등을 들고 찍은 사진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생들이 이 같은 옷을 입는 건 범죄자를 즐겁고 유쾌한 존재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중학생 자녀를 둔 이모(40·회사원)씨는 “아무리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교육기관인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범죄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단체복인 만큼 해당 콘셉트를 원하지 않는 학생은 사실상 구매를 강요당하는 점도 문제다. 다수결로 야쿠자, 조폭, 죄수복 등이 반 티로 결정되면 나머지 학생은 그대로 따르는 분위기다. 전학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곧 체육대회인데 우리 반은 야쿠자 반티로 정해져 있더라”라며 “솔직히 예쁜지 모르겠고 집에 가져가면 부모님도 안 좋아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이라는 누리꾼도 “반 티가 야쿠자 콘셉트로 정해졌다.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야쿠자 콘셉트가 반 티로 결정되는 것이 정상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교사들도 마땅히 이를 제재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문화인데다, 학생들이 자치 회의에서 직접 의견을 모아 결정한 사안이라 끼어들기 힘들다는 얘기다. 교사 A씨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문화를 잘 모른다”라며 “어른들은 ‘왜 야쿠자, 조폭이지?’하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명한 작품에 나와 아이들이 ‘밈’처럼 따라 하는 것일 수 있어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고 말했다.
또 한 번 입고 말 단체 티셔츠를 사비로 구매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야쿠자, 조폭, 죄수복 콘셉트의 반 티는 워낙 튀어서 체육대회가 아니면 평소에 입기 힘들다. 사실상 단 하루를 위해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티셔츠 가격은 보통 2~3만원 수준이고, 소품까지 사면 4~5만원 가량이 든다. 교육업계에 따르면 반 티는 학급 운영비로 책정된 예산을 쓰거나, 학생 사비로 구매한다.
박모(주부)씨는 최근 자녀의 체육대회 반 티 구매로 1만8000원을 썼다. 그는 “누군가에겐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 있다”며 “체육대회가 끝나면 입지도 않을 반 티를 꼭 구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경제나 환경 측면에서 낭비다”라고 말했다.
모든 체육대회에서 범죄자 콘셉트 반 티를 입는 것은 아니다. 경기 광명시 한 중학교 1학년인 유모양은 최근 반 친구들과 같은 색 티셔츠를 입고 체육대회를 했다. 유양의 부모는 “옷 색상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 충분히 체육대회를 즐겁게 즐겼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