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모(33·회사원)씨에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남들이 볼 땐 네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10년차 직장인이다. 동시에 그는 경제비지니스 인플루언서를 꿈꾸며 ‘헤이임자’라는 필명으로 유튜브, SNS 등을 운영하고 외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아이가 잠든 지난 13일 오후 10시. 임씨는 유튜브 스터디 모임에 낼 영상 숙제를 만들고 있었다. 저녁 반찬을 준비하며 찍은 요리 영상을 1시간 동안 편집해 20초짜리 쇼츠 영상을 만들었다. 곧바로 유명 재테크 카페를 통해 최근 시작한 ‘썰(Ssul) 푸는 가계부로 목돈 모으기’ 강연 준비를 마쳤다. 자정이 다 돼서야 가계부 작성을 마치고 “오늘 하루도 만족한다”며 하루를 마감했다. 말 그대로 ‘갓생’(God+生,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이다.
요즘 많은 20~30대 직장인들이 바쁘게 살며 자신의 삶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회사를 위해 한 몸 바치던 부모 세대와 달리, 남는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쓴다.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또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새벽·점심·저녁, 빈틈을 채우는 청년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20~30대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공부, 운동, 독서 등으로 아침을 알차게 보낸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 챌린지’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난 14일 오전 6시 경기 안양시 안양천에서 만난 직장인 A씨는 “출근 전 헬스장을 가거나 안양천을 따라 달리기를 한다”며 “새벽에 운동하면 상쾌하게 출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근 헬스장은 새벽 5시부터 운동을 온 회원들로 북적였다. 헬스장 회원인 김모(38·회사원)씨는 “출근 전 시간대엔 새벽 5시쯤이 제일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퇴근 이후엔 야근이나 모임 등으로 운동이 어려울 때가 많아 출근 전 운동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최해원(34·회사원)씨의 모닝 루틴은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된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지 벌써 1000일이 넘었다. 필명 해원칭으로 SNS에서 활동 중인 그는 새벽 시간 인블유(인스타그램·블로그·유튜브) 작업을 하거나 독서, 글쓰기에 시간을 들인다.
직장 내 점심시간 풍경도 바뀌고 있다. 고작 하루 1시간이지만, 한 달이면 20시간이고 1년이면 240시간이다. 인스타그램에 점심운동, 점심헬스, 점심네일 등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백개가 넘는 게시물이 쏟아진다. 점심시간을 취미나 새로운 자기 계발의 장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이승렬(29·회사원)씨는 포케 중심으로 간단히 식사하고 오후 근무 시작 전까지 회사 인근 헬스장에서 운동을 즐긴다. 그는 “퇴근 후 학원에 다녀서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라며 “때때로 점심에 운동을 못한 날엔 학원 건물 헬스장에서 오전 12시까지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점심시간 짬을 내 운동이나 책을 읽고, 태닝을 즐길 때도 있다고 한다.
‘갓생러’ 20~30대 직장인들의 일정이 본격 시작되는 건 퇴근 이후부터다. 퇴근하고 잠들기 전까지의 가용시간을 쪼개고 쪼개 알차게 쓴다. 최씨는 퇴근 후 운동에 특히 집중한다. 퇴근 후 필라테스, 헬스, 라이딩, 테니스 등 꾸준히 해왔다. 지난해 자전거 국토 종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총 7번의 바디프로필을 촬영했을 정도로 운동에 진심이다.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매일 SNS에 기록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퇴근 후 자기 계발에 힘을 쏟는 청년도 많다.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는 이씨는 퇴근 후 오후 8~10시 3D 모션그래픽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으로 향한다. 배모(31·회사원)씨도 오후 7시에 퇴근해 오후 10시까지 대학원 수업을 듣고 틈틈이 기자단 활동도 한다. “취업하고도 역량 강화가 중요한 시대”라는 생각은 그를 더 부지런하게 만들었다고. 회사 업무와 연관이 없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직장인도 많다.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하고 있는 박모(36·회사원)씨는 “평소 아동·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시작했다”며 “처음 공부하는 분야인데다 늘 시간에 쫓겨 힘들긴 하지만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퇴근하면 ‘부캐’로 변신
평범한 직장인의 다양한 자기 계발 활동은 남들은 모르는 부캐(부캐릭터)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교육회사에서 콘텐츠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10년차 직장인 이승화(30대)씨는 10년째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짬짬이 글을 써 6권의 교육서를 출간한 작가이자, 읽기 코칭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씨의 아내이자 F&B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는 30대 직장인 오모(필명 부기)씨도 틈틈이 쓴 글로 에세이 책을 출간한 작가다.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보고 있는 최씨 역시 1년 넘게 유명 재테크 카페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달에 나올 책 출간을 위해 막바지 작업 중인 작가이기도 하다.
n잡러가 계속 늘어나는 이면엔 자기 계발을 위한 욕구도 있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상도 존재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청년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았다. 이승렬씨는 “물가·집값도 오르고, 취업시장은 점점 일당백을 원한다”며 “청년들이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면서, 지금부터라도 나를 챙기고 성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승화씨는 이렇게 말했다.
“자아실현을 위해 처음 독서 모임을 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독서 모임 이야기로 논문도 쓰고 첫 책을 출간하면서 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왔죠.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 개인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자존감이 올라갔습니다. 이후 금전적 이익도 뒤따라 다음 책을 쓸 수 있었고, 강의 섭외도 계속 받게 됐습니다. 현재 삶에 매우 만족합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