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노가다, 오늘은 용접, 내일은 몰라요

어른들은 말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우고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로 왔다. 기대하던 미래는 없다. 버텨야 하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양승규(28)씨의 본가는 대구다. 대구에서는 문자 그대로 할 일이 없었다. 일자리, 문화생활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했다. 취업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씨가 말랐다. 지난 2018년 양씨는 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선택이 아니었다.

2020년 통계청 대졸자 이동 경로 조사에 응답한 지방 출생 청년은 1만638명이다. 이중 일자리를 구했다고 말한 사람은 6815명. 여기서 서울에 직장을 잡은 사람은 1369명이다. 직장을 구한 지방 청년 20%가 양씨처럼 서울에 올라와 일하는 것이다. 범위를 수도권으로 넓히면 32%까지 늘어난다.

양씨의 상경 자금은 40만원. 그 돈으로 마포구 홍익대학교 부근에 6.6㎡(2평) 방 한 칸을 얻었다. 누울 곳을 구하니 당장 쓸 돈이 없었다. 자기 계발을 하고 적성을 찾고 싶었지만 시간은 양씨 편이 아니었다.

인력사무소에 갔다. 흔히 ‘노가다’라 부르는 건설현장 일을 하기 위해서다. 새벽 5시에는 나가서 대기해야 했다. 운이 좋으면 오전 9시에 시작하는 현장에 갈 수 있었다. 인력사무소에 나온 10명 중 2~3명은 양씨와 같은 청년이었다. 이곳에서도 경력 없는 신입이 할 만한 일은 많지 않다. 청소나 폐기물을 줍는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종일 먼지를 먹고 받는 돈은 10만원. 인력사무소가 소개비로 10%를 떼 갔다.

한 가지 생각이 뚜렷해졌다. 사는 지역은 너무나 중요하다.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시스템 워크넷에 들어가면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자격증을 따려면 빨라도 몇 달 걸릴 텐데 그동안 서울 생활비를 벌 수 없잖아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이 취업을 목적으로 시험 준비를 하는 데에만 평균 9.1개월, 지출 비용은 월평균 22.9만원이 든다. 서울에 올라와 하루하루 사는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투자는 먼 이야기다.

지인 추천으로 동대문 도매 의류 상가에 나갔다. 중국에서 떼온 옷을 정리하고 팔았다. 오후 8시30분에 시작해 새벽 5시에 끝나는 일이었다. 30~40㎏짜리 옷더미를 들고 매일 10차례 이상 계단을 오르내렸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야간 수당도 없이 그렇게 3년을 일했다. 이는 곧 3년간 저녁잠을 자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일에 능숙해질수록 몸이 상하는 게 느껴졌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택배 업무는 그나마 바로 시작 가능했다. 각종 택배를 분류해 지정 기사 트럭까지 옮겼다. 하루에 나르는 양은 100여개. 이 중에는 가벼운 상자도 있었고 20㎏ 쌀도 있었다. 이마저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양씨는 현재 인테리어 회사에서 용접 일을 배우고 있다. 전문 기술인이 되겠다는 비전은 생겼지만 안정성은 떨어졌다. 일하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아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한 달에 얼마를 벌지 가늠이 어려워졌다. 지출에도 영향이 갔다.

양씨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자신이 없다. 서울에 와서 양씨는 무엇을 이뤘을까. 다시 내려갈 수도 마냥 버틸 수도 없는 상태에서 4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