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서 원룸까지 4년…서울집, 너 뭐 돼?
빛 없는 반지하를 탈출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지난 2018년 전남 해남에서 상경한 최석진(27·가명)씨의 이야기다. 영상 편집자를 꿈꾸던 스물셋, 최씨는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첫 자취방은 관악구 신림동의 12㎡(4평) 반지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6만원짜리 방이었다. 지상에서 살려면 9만원이 더 필요했다. 살아남으려면 한 푼이 아까웠다.
서울에 살려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최씨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던 시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매연이 들이닥쳐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향초를 피워도 퀴퀴한 냄새가 났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곰팡이가 보였다. 바닥에는 벌레가 기어 다녔다. 창밖으로는 자동차 바퀴와 사람들 정강이가 보였다. 겨울에는 방에서도 패딩을 껴입었다. 하얀 입김이 보였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최씨는 점점 우울해졌다. 떠날 수 없었다. 월급 230만원으로 보증금을 마련하기 역부족이었다. 그는 지난 8월에야 볕 드는 20㎡(6평) 원룸으로 이사했다. 4년간 꼬박 모아온 돈과 햇빛을 맞바꿨다. “햇빛이 방안에 들어오니 살 것 같아요. 이제 환기가 되니 음식도 해먹을 수 있겠네요”
2019년 상경한 해남 출신 김나은(여·24·가명)씨. 마포구 3.3㎡(1평) 고시원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보증금 300만원, 월세 15만원.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방이었다. 가격과 환경은 반비례했다. “간단한 짐만 갖고 왔는데도 누울 자리가 없었어요. 누우면 화장실 문이 발끝에 닿아서 관에 들어간 기분이었죠” 석 달을 버티기 힘들었다. 서울에서의 두 번째 보금자리는 종로구 삼청동의 20㎡(6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가파른 언덕 꼭대기 집. 월세는 75만원에 달했다. 홀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룸메이트를 구해야 했다. 총 3명이 월세를 나눠 냈다. 다 같이 누우면 방이 꽉 찼다. 모서리에 붙어 새우잠을 잤다.
상경 청년 대다수는 ‘렌트푸어’다. 렌트푸어는 소득의 대부분을 집값으로 지출하는 이들을 뜻한다. 김씨는 이 시기 아르바이트로 번 돈 3분의 2를 주거비로 썼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 10명 중 3명은 주거비 과부담 가구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를 초과한다. 주거의 질도 나쁘다. 청년 1인 가구 중 7.5%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다. 청년 1인당 평균 주거 면적은 30.9㎡(9.3평)다. 전체 1인 가구 평균(33.9㎡)에 못 미친다.
상경 4년 차에 접어든 김씨는 여전히 월세살이 중이다. 좁은 자취방은 휴식처라는 느낌보다 박탈감을 안겨주는 장소가 됐다. 내 집 마련의 꿈은 꿔본 적도 없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요? 넘볼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요. 서울 출신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상경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타향살이는 생각보다 더 고달프다. 떠밀리고 떠밀려 도착한 곳,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곳, 내 고향이 아닌 곳. 서울 유독 고달팠던 하루를 마치며 생각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서울살이, 이제는 끝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