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특식, 5000원 편의점 도시락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온 김진수(28·가명)씨에게 서울은 어둡다. 지난 2019년 상경한 김씨는 영상 제작회사의 조연출이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한다. 자정을 넘겨 야근하는 게 일상이다. 손에 쥐는 월급은 세후 180만원 남짓. 한 달을 살아내기 빠듯하다. 김씨의 한달살이는 어떨까. 지난 9월 김씨의 총지출은 171만8790원이다. 고정 비용만 80만원가량이다. 13㎡(4평) 자취방 월세 40만원, 부모님 용돈 20만원, 교통비 12만원, 콘택트렌즈 등 의료비 7만2000원, 기부 1만원 등이다.
한 달 식비는 30만원 안팎이다. 하루 식비 만원을 넘기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다. 편의점 도시락, 달걀프라이, 참치 통조림이 주로 상 위에 오른다. 열량이 높은 라면·과자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채소·과일이 먹고 싶은 날은 마트 알뜰 코너로 향한다. 갈변한 바나나, 생기 잃은 브로콜리 등을 골라 담는다. “항상 돈에 쪼들려요. 생활비가 빠듯해서 한 끼라도 싸게 먹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제일 서러울 때는 50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살까 말까 백번쯤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볼 때죠”
옷을 사거나 오락에 쓴 내역은 찾기 힘들다. 가을 코트(5만3000원) 구입, 넷플릭스·웹툰(6만1890원) 결제가 유일하다. 아끼고 아끼지만 한 달 치 수입은 금세 동이 난다. 2020년 기준 39세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비 지출 237만6000원. 김씨는 이보다 67만원 적게 쓰지만 매달 적자를 걱정한다.
김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유니온의 ‘2018 청년 가계부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청년 74%는 식비·주거비 등 필수 생활비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건 박탈감이다. 김씨는 언제부턴가 서울 토박이인 직장 후배와 자신을 비교한다.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벌지만, 삶의 격차는 좁힐 수 없을 만큼 크다. 서울 본가에 사는 후배는 월급의 반을 저금하고, 분기마다 해외여행도 간다. 김씨는 높은 물가와 주거비용을 감당하느라 저축을 포기한 지 오래다. 아득바득 아껴도 월 20만원 모으기가 벅차다. “서울 출신들이 부러워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니까요. 돈 드는 취미도, 여행도 포기했는데. 포기가 이제 슬프지도 않고 익숙해요. 그래서 억울해요”
상경한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타향살이는 생각보다 더 고달프다. 떠밀리고 떠밀려 도착한 곳,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곳, 내 고향이 아닌 곳. 서울 유독 고달팠던 하루를 마치며 생각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서울살이, 이제는 끝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