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서울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박주원(29·가명)씨. 박씨의 꿈은 바리스타였다. 지난 2019년 상경하자마자 한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달 만에 업무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됐다. 이후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행복은 잠시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대표의 폭언에 시달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다. 억울했다. 어떻게든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런 연고 없는 서울. 도움을 구하거나 기댈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이게 맞나요?’라고 묻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요.계속 혼자 알아가야 한다는 게 힘들었죠” 박씨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대구에서 상경한 김진수(28·가명)씨는 친구들에게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서울에 왔으니 만나자는 친구 연락에 일이 많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다. 점심 1만원, 카페를 가면 5000원. 술이 포함된 저녁 3만원. 친구에게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다. 고향에서와 달리 지갑을 여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마어마한 서울 집세와 생활비를 대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외로울 때는 혼자 한강에 간다. 한강을 홀로 보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살면서 서울에 남으려는 내 자신이 불쌍해요. 서울이란 공간 자체가 참 징그러워요”

최벼리(여·31)씨에게 집은 여전히 대구 한 곳뿐이다. 서울살이 11년째지만 뿌리 내리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 결혼도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최씨의 남편도 상경 청년이다. 양가 부모님은 모두 지방에 계신다.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거리가 멀어지니 쉽게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다. 자녀를 원하지만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인지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힌다. 워킹맘이 돼도 도와줄 가족이 없다. 대구에 있는 엄마 생각이 간절하다. “서울에 태어났다면 달랐을까요” 최씨가 씁쓸하게 말했다.

외로움은 상경 청년을 지배하는 감정이다. 쿠키뉴스와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지난 12일~18일 상경 경험이 있는 국민 303명을 대상으로 외로움 척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20대 40%, 30대 54.3%가 ‘상경 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외로움 때문에 서울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답한 비율은 20대(18.2%), 30대(22.9%)에 그쳤다. 한 30대 응답자는 “일자리 때문에 외로워도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는 “만족보다는 생존을 위한 상경”이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힘든 시기, 고향은 안식처 같지만 돌아가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천에서 올라온 25세 남성이 남긴 말이다. 외로운 상경 청년에게 해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