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신보건 개혁이 시급하다

기선완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지난 해 마지막 날 환자를 진료하다 운명을 달리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안타까운 소식으로 정신의학계는 신년 벽두부터 초상집이다.

 

개인적으로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필자도 연말 한 송년회 자리에서 고인을 만날 수 있었다. 우울증 치료와 자살예방 사업에 큰 업적이 있었던 고인은 말수가 적고 기품이 있는 모습이었다. 고인의 평소 성실한 태도와 존경스런 행동으로 말미암아 동료 정신과 의사들과 가족들의 아쉬움과 슬픔이 더욱 크리라 짐작된다. 아까운 인재가 갔다. 


유족들이 전하는 고인의 뜻으로 "의료진의 안전이 보장되는 진료 환경 구축"과 "사회적 낙인 없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당부는 우리들을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최근 잇따라 발생했던 응급실의 폭력 문제와 더불어 이 사건은 의료진의 안전 보장이 얼마나 시급하게 필요한 과제인 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들이 공익에 기여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요구받는 만큼 국가와 사회도 의사들의 안전을 보장해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제어가 안 되는 흥분한 사람들이나 취객들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의료 행위를 폭력적으로 훼방 놓아서는 안 된다. 제도적 법적 안전보장 장치와 진료 현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에 대한 엄벌, 그리고 실질적 안전보장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비극의 시간 속에서도 유족들은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려 마음의 고통을 가진 환자들의 사회적 낙인을 걱정하였다. 실제 우리나라처럼 만성 정신장애인들의 치료와 재활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선진국은 없다.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서도 입원 과정에서 환자의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복잡한 규정 준수를 기계적으로 지키도록 하였을 뿐,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방지와 실질적 인권 향상, 환자의 회복과 양질의 치료를 위해 법적 당위성을 갖춘 구체적인 실행 방법도 예산의 뒷받침도 거의 없다. 민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 대한 의무는 강조되었으나 국가와 정부의 책임은 방기된 상태다.


정부 차원의 탈수용화와 지역사회 치료로의 정책 전환에 대한 상징적 선언도 없었다. 단지 의학적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지불 체계가 건강보장대책의 거의 전부이다 보니 환자는 입원 치료 후 지역사회에서 방치되거나,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만성 환자로 전락하기 십상인 게 현실이다.

 

결국 생계가 어려운 처지로 내몰려서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고, 저렴한 정액제 수가를 빌미로 장기간 입원을 거듭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역사회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으나 아직도 보건복지부 기금 예산으로 턱없이 빈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복귀시설들도 재정 상태가 영세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곳들이 많다. 그나마 존재하는 시설들도 서로 연계가 원활하지 않고 파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신분보장이나 인건비 조차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과정이 힘겹다. 


그러면서도 나라에 큰 일이 터질 때마다 일 폭탄이 떨어진다. 자살은 OECD 국가들 중 부동의 1위였고, 청소년들에겐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신음하고 있고 인터넷 중독과 알코올 중독의 심각한 정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살예방사업, 소아청소년사업, 재난정신의학 관련 업무, 알코올 및 인터넷 중독 예방과 치료 등의 실행 업무들과 더불어 정신건강증진과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홍보 업무까지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의학적 치료 후 정신장애인에게 당연히 제공돼야 할 사례관리와 다양한 정신재활프로그램, 직업재활에 대한 공적 보장과 서비스 지불 체계를 아직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맛보기 정신재활서비스만 상징적으로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부실한 체계 속에서는 정신과 환자가 입원 치료 후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약을 먹지 않고 재발하여 증상이 악화되기 쉬운 환경이다. 결국 극도의 혼란과 흥분, 그리고 이유 없는 증오심에 사로잡혀 다시 병원을 방문하기 일쑤이다. 

 

마침내 선량한 의사가 희생되었다. 이 정신과 의사를 살해한 책임이 있는 당사자는 다름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허약한 정신보건 시스템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신과 시설에서의 의료인 안전에 대한 점검이 전국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누가 누구를 점검하는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다 나은 치료와 재활, 그리고 회복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야 한다. 당연한 요구이다. 그리고 고인의 뜻을 기리는 일이기도 하다.
 

정리= 이기수 대기자 elgis.le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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