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그간 영화계에 돌던 ‘정권외압설’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주인공은 앞서 박근혜 정권의 ‘K컬처밸리’ 사업에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부당이득을 봤다는 의혹을 받은 데 이어 현 정권의 외압 탓에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등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뒷말을 들은 CJ E&M(이하 CJ)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더니 옛말이 ‘딱’입니다.
16일 오전 한겨레는 2014년 11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독대해 “씨제이의 영화·방송 사업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 방향을 바꾸라”고 직접 요구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죄송하다. 방향을 바꾸겠다”고 답했죠. 이날 박 대통령은 손 회장과 인사를 주고받은 직후 “CJ가 ‘좌파’ 성향을 보이고 있으니, 영화 제작의 방향을 바꾼다면 나라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직접적으로 압박을 넣었다고 합니다. 독대 이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故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이어지며 박 대통령 정권에 관한 비판으로 번지던 때였죠. 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제작사인 CJ를 직접 압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응한 손 회장의 답변도 놀랍습니다. 손 회장은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 중에 편향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제가 이번에 모두 정리했다. 앞으로는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후 정부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해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등의 영화에 공격적으로 투자·배급하며 시쳇말로 ‘애국주의’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포착됐죠. 현 정권이 압박하는 바람에 영화계가 계속해서 여당과 정권 비위 맞추기의 일환으로 이전 세대를 미화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문은 자자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처음입니다.
이외에도 영화 ‘변호인’의 투자배급사 NEW 또한 비슷한 이유로 ‘연평해전’을 만들게 됐다는 설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부림사건을 맡았던 과정과 그 이후를 그린 ‘변호인’ 또한 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이는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또 2012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도둑들’ ‘광해’를 비롯해 2013년 ‘7번방의 선물’ 2014년 ‘명량’ ‘국제시장’, 2015년 1000만 관객을 기록한 ‘베테랑’과 ‘암살’에 이르기까지 모두 명절 특선 영화로 지상파에서 방송됐지만 2013년 1000만 관객을 달성한 ‘변호인’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적이 없다는 것도 정권 압박설에 한몫했습니다.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의' 제작사 등은 소문 진화에 나섰습니다. '국제시장'의 투자·배급을 맡은 CJ E&M측은 "'국제시장'의 제작 기획시기는 2012년"이라며 "회사에서 '국제시장'에 투자·배급한 시기는 박 대통령과 손 회장의 독대 이전 시점"이라고 밝혔죠. '인천상륙작전'의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억울함을 피력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애초에 CJ측에서 투자를 꺼렸던 작품으로, 이후 뒤늦게 CJ가 투자자에 합류했으며 투자액 대비 고액투자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CJ 측에서 개봉시기조차 확정해 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작품인데, 뒤늦게 이런 일들에 거론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압박설'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대중문화를 비롯한 스포츠 등을 화제로 삼아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하는 ‘3S’ 정책에서 발전해 대중문화로 국민을 컨트롤하려 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른 정권. 2017년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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