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학력’이 저출산 원인? 황당한 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 대책

‘여성 고학력’이 저출산 원인? 황당한 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 대책

원종욱 연구원 “여성 휴학·연수 시 채용에 불이익 줘야” 주장

기사승인 2017-03-01 14:30:06
보사연 측 “논란된 원종욱 선임연구원, 보직 사퇴”

[쿠키뉴스=송병기 기자] 보건복지부 산하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이 한 포럼에서 저출산 원인이 여성들의 고학력 때문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보사연 측은 원 연구위원이 보직에서 사퇴했다고 밝히고, 원 연구위원도 직접 게시판에 사과의 글을 올렸지만 대국민 직접사과와 원 연구위원 파면 등을 주장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휴학·연수·자격증 취득 하는 여성에 취업 불이익 줘야, 황당 주장

논란은 지난달 24일 보사연이 주최한 ‘주요 저출산대책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 주제 포럼에서 발생했다. 당시 원 연구위원은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을 주제로 네 번째 발표자로 나섰다.

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원인에 대해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에 더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인율을 올리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으로 원 연구위원은 “혼인율 제고정책은 미혼자가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t1)을 줄여주는 정책과 미혼남녀가 매칭되는 기간(t2)을 줄일 수 있는 정책, 결혼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계층(결혼시장이탈계층)을 줄일 수 있는 정책으로 구분하여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다소 황당한 주장을 펼쳐다.

특히 원 연구위원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 등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불필요한 스펙 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고 지원자와 기업 간 탐색과 매칭이 일어나는 연령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28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원 연구위원이) ‘불필요한 스펙을 쌓아서 회사에 취업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혼인시장, 결혼시장에 들어오는 시기가 늦어지기 때문에 결혼이 안 된다’ 이렇게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결혼시장 일찍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휴학과 연수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런 대책을 내놨다”면서 “이는 헌법정신 위배다.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 연구위원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대신해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해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택광 교수는 CBS라디오 방송에서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을 개발 하자. 이것도 되게 웃기는 발상이다. 앱을 만들어서 그런 배후자 탐색하는 방법들을 일찌감치 좀 가르쳐주자. 누구에게 가르쳐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남성들에게 가르쳐주자는 것 같다”면서 “남성들에게 여성들을 잘 사귈 줄 모르기 때문에 혼인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성에게 여성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데이트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앱을 만들자라고 그런 발상인 것 같다. 가장 황당했던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고학력이 저출산 원인?

포럼에서 원 연구위원은 마지막 대책으로 하향선택결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또 다시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CBS라디오 방송에서 이택광 교수는 “이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결국 여성들이 쌓는 스펙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고학력 여성들 때문에 결혼이 안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향 결혼을 유도해야 한다. 그런 문화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서 보급을 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그 보고서에서 통계를 뽑아보니까 대부분 고학력 여성들과 저학력 남성들이 결혼율이 낮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둘을 결합을 시키면 되지 않느냐. 이것은 아주 경제학적인 발상, 경제주의적인 발상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란 일자 사과문 발표한 보사연, 원종욱 연구위원 보직 사퇴

이번 포럼 후 지난달 25일부터 보사연 홈페이지 ‘연구원에 바란다’ 게시판에는 원종욱 연구위원을 파면시키고, 사과해야 한다는 글이 크게 증가했다. 한달에 1~2건 정도의 글이 올라오던 해당 게시판에는 지난달 25일부터 3월1일 현재까지 약 700여건의 원종옥 연구위원 해임 또는 파면, 대국민 공식사과 등 비판의 글들이 실명으로 게시되고 있다.

결국 보사연도 직접 사과의 글을 올렸다. 감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지난달 26일자로 “지난 금요일(24일) 인구포럼에서 발표된 학술논문 중에 최근의 만혼과 독신현상을 분석한 내용에 부적절한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어 김상호 원장은 “포럼은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학술적 연구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나 스펙 쌓기의 근절과 독신남녀의 혼인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안에 있어 부적절한 표현이 사용된 점을 인정한다. 향후 연구원은 원내에서 수행하는 모든 연구에 대해 보다 세심한 검토와 검증을 통해 문제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원종욱 박사는 인구영향평가센터장에서 자진해서 물러나기로 했고 27일자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사자인 원종욱 연구위원도 “지난 24일 인구포럼 발제 내용 중 부적절한 내용과 불필요하고 지나친 표현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 사과드린다. 모형 분석과 해석에 매몰돼 결혼은 존중되어야 하는 개인의 선택이며 많은 분들이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였음을 깨닫고 있다”며 “저의 일방적인 접근방법과 개인의 선택을 침해하는 제언은 매우 부적절하였음을 인정한다. 또한 이로 인해 많은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게시판에 직접 사과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김상호 원장의 사퇴와 원종욱 연구위원의 파면이나 해임, 대국민 공식 사과 등이 필요하다는 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여성혐오에 저항하기 위해 20대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인 ‘불꽃페미액션’ 측은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사연의 부적절한 출산율 제고 대책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여성은 가축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생산기구가 아니다. 고학력 여성들의 ‘하향 선택’을 강요하는 성차별적인 내용의 보고서는 정부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정부야 네가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 키우지”라며 보사연 측의 대책을 비판했다.

이어 불꽃폐미액션 측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 후에 부과되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사회적으로 종용되는 경력 단절과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다.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결혼이 여성들에게 지우는 부담과 이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songbk@kukinews.com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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