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강력한 대권주자로

기사승인 2017-04-03 19: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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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강력한 대권주자로[쿠키뉴스=이소연 기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의 대권주자로 3일 낙점됐다. 지난 2012년 대선 패배 후, 문 전 대표는 차기 지도자로서의 기반을 다져왔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1순위로 꼽히며 ‘대세’임을 증명했다.   

▲ 대학시절, 유신독재에 저항…유치장서 듣게 된 사시 합격 통보  

문 전 대표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항거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지난 1975년 4월에는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대학에서 제적됐다. 석방 직후, 그는 강제 징집됐다. 훈련이 고된 것으로 유명한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학생 운동 전력 때문이었다. 두 차례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받았다. 다만 당시 여단장이었던 전두환씨로부터 표창을 받은 것을 두고 최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80년 복교했으나 전씨 등 신군부 세력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로 인해 구속됐다. 신군부는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대학생, 사회인사 등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서울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상태에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 차석으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경력으로 인해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 ‘인생의 벗’ 노무현과의 만남…노동·인권 변호사에서 靑 비서실장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 지역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부산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부산상공회의소 점거농성, 노동자 구속·해고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에도 발을 담갔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산지부와 경남지부장 등을 역임했다. 동업자였던 고 노 전 대통령이 정계로 떠난 후에도 그는 시민·사회 활동가로 남았다.

지난 2003년 청와대에 입성한 고 노 전 대통령은 문 전 대표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로 건강이 악화돼 1년 만에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휴식은 길지 않았다. 네팔에서 트레킹을 즐기던 그는 영자신문을 통해 고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알게 됐다. 즉시 귀국,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다. 이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임기 말까지 고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 노무현 서거 후 ‘친노’의 구심점 역할…정계 입문서 대선 출마까지 

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전 대표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는 국민에게 서거 소식을 정식으로 알렸고, 장례 절차를 도맡았다.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친노(친노무현)’의 구심점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정치권의 구애를 거절하던 그는 지난 2012년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다. 사상구는 지난 96년 이후 줄곧 보수 후보가 당선돼온 지역이었다. 문 전 대표는 “부산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며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다. 55%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같은 해 12월 대선에 출마, 민주통합당의 18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섰다. 야권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후보에서 사퇴했다. 무소속으로 출마, 돌풍으로 일으키고 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문 전 대표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후 후보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3.6% 차로 패했다. 문 전 대표는 “모든 것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 친노 그림자 벗어나 야당의 당수로…두 번째 대권도전·지지율 1위  

문 전 대표는 대선 패배 후,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2015년 2월 민주통합당의 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련)의 당 대표로 선출됐다. 순탄하지는 못했다.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패권주의’ 논란으로 늘 잡음이 일었다. 내홍으로 인해 천정배·박주선 의원이 탈당했고, 박준영 전남지사도 당을 떠났다. 새정련의 초대 당 대표였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당을 바꿔보려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며 문 전 대표를 등졌다. 같은 해 열린 10·28 재·보선 선거에서도 패하며 문 전 대표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듯 했다. 

문 전 대표는 갈등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정면돌파를 택했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는 등 혁신안을 추진했고 새로운 인사를 영입했다. 친문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손혜원 디자인 컨설턴트,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김병관 웹젠 대표이사 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입당시켰다.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에게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직과 당의 전권을 함께 맡겼다. 문 전 대표는 2선으로 물러났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백의종군’한 문 전 대표는 당에 ‘절반의 승리’를 안겼다. 수도권에서는 전승을 기록했으나 본거지였던 호남에서는 의석 대다수를 국민의당에 내줘야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에는 ‘문재인 대세론’이 공고해졌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의 지지율을 얻어 콘크리트 지지층이 형성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는 지난 1월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이젠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끝내 피하고 싶은 길을 걷게 됐다”며 지난 19대 총선에 뛰어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soyeon@kukinews.com / 그래픽=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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