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택시운전사'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쿡리뷰] '택시운전사'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7-07-26 14:45:12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5월 중순께 광주에 가면 도시 전체에서 향 연기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 집 건너 한 집 꼴로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세 개의 숫자는 그 안에 담긴 것들을 모두 나타내기에는 충분치 않다. 가족을 잃은 슬픔 그 이상의 비탄, 국가라는 단위로 자행된 야만, 평범한 시민들의 몰이해가 만들어낸 비극.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는 1980년 5·18을 경험한 한 택시운전사의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담아낸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히츠페터(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일본 특파원이지만 기자로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도 되는가에 대한 직업적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건너온 영국 기자에게서 한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 아무도 몰라.” 그 한 마디에 히츠페터는 곧장 한국으로 향한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공부를 하려고 대학에 가 놓고 데모나 하는 요즘 것들’이 싫다. 데모 때문에 서울 시내 길이 모조리 막히기 일쑤라 운전으로 생계를 잇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월세도 10만 원이나 밀려있는 상황. 그 때 만섭은 “광주에 내려갔다가 통금 전까지 서울로 올라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말도 안 통하는 히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간 만섭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격한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간 재식(류준열)은 다친 시위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히츠페터와 만섭을 만난다. 말이 안 통해 답답한 채로 좌충우돌하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재식이 통역을 한다. 재식을 만나 그나마 숨통이 트인 만섭이 광주의 상황을 보고 재식에게 묻는다. “왜 저런대?” 히츠페터가 왜 만섭을 닦달하는지 명쾌하게 답해주던 재식의 대답은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다.

‘택시운전사’는 분명 장훈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만듦새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부분은 역력하게 구멍이 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에 탄탄함은 부가적 문제다. 실화에 허구를 불어넣었다 해도 시나리오적으로 탄탄한 영화가 분명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비극적 현대사를 놓고 기승전결을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실제의 사건에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장훈 감독의 조심스러움이 엿보인다.

영화는 외부자인 만섭의 시선으로 5·18을 느리게 관찰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은 당시를 직접 겪지 못한 이들이기에 만섭에게 더욱 쉽게 몰입한다. 영화는 클로즈업이나 강조 없이 뿌연 최루탄 연기 속에 잠긴 광주 금남로의 모습을 담아내지만, 그 장면 하나하나는 모두 충격적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폭도들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군인’들이 ‘빨갱이와 폭도들’을 ‘무찌르는’ 풍경. 만섭은 자신이 믿어오던 것이 뒤집힌 가운데 스스로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올해 4월 출간된 회고록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사태를 ‘폭동’이라고 규정하며 '5·18사태 때에는 북한의 특수요원들 다수가 무장하고 있는 시위대 속에서 시민으로 위장해 있을 터였다(531쪽)' 등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또 '5·18 때 북한의 특수공작원으로 침투했다가 돌아가 그 뒤 북한의 정부와 군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541쪽)'는 지만원씨의 주장을 인용했다. 지만원씨는 '5·18은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해 허위사실 유포와 사자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아직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달 2일 개봉.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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