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⑭ [단독] 빛 좋은 개살구?…총체적 난국 ‘강제동원역사관’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⑭ [단독] 빛 좋은 개살구?…총체적 난국 ‘강제동원역사관’

[쿠키뉴스 특별기획]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사승인 2017-09-26 06:00:00

[편집자주] 지난 1938년 제국주의 실현을 꿈꾸던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들은 원치 않는 총을 들어야 했고,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중 최소 60만명 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흐려졌다. 교과서는 단 한 문단으로 피해자의 삶을 축약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은 정부의 불허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역시 지지부진하다. 백발이 성성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국회와 법원을 오간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강제 동원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피해자와 유가족을 찾았다. 일본을 방문, 비극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94세의 피해자를 대신해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그의 간절한 당부를 독자들께 전한다. 


# “일제 뭐라고? 대연동에 그런 건물이 있어요?”

부산에서 13년간 택시기사로 일해 온 김성대(70)씨는 위기에 봉착했다. 손님이 말하는 목적지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구 대연동에 있다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역사관). 반복해서 들어도 모르겠다. 역사관 세 글자만 겨우 알아들었다. 부산 토박이로 살아온 지 70년. 김씨는 내비게이션을 켤 수밖에 없었다.

역사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김씨 만이 아니다.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부산 시민 중 열의 아홉은 역사관에 대해 “처음 들어봤다”고 답했다. 지난 2015년 12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역사관을 건립했다. 그러나 이곳 시민들조차 역사관의 존재를 모른다. 

▲ 522억원 들인 역사관…내부 전시품 빈약하기 그지없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박물관은 ‘문화·예술 등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관련 자료를 수집·전시하는 시설’이다. 즉, 박물관은 수집한 유물을 통해 전시 및 교육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부산 역사관은 가장 기본적인 전시의 기능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역사관 소장유물은 5077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16전국문화기반시설총람’에 따르면 전국 국립박물관 40개소의 평균 소장자료 수는 4만5260점이다. 총 522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역사관과 비슷한 규모인 ‘국립춘천박물관’과 ‘국립나주박물관’의 소장유물은 각각 6만4504점과 1만1852점이다. 역사관의 경우 국립춘천박물관(391억원)과 국립나주박물관(417억원)보다 약 100억원의 투자금이 더 들어갔지만, 보유한 자료량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다. 역사관의 자료 중 대부분은 패널 자료다. 패널 자료는 문이나 벽에 붙이는 목재‧유리‧금속으로 된 사각형 판으로 된 자료를 말한다. 설명문 위주로 구성되어 강제동원의 실태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행한 ‘위원회 활동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역사관 내 패널 자료는 452건이다. 역사관 내 전시자료 562점과 비슷한 수치다.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오래된 자료들만 전시해놓고 끝내면 안 될 문제”라면서 “역사관은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역사까지 함께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역사관은 자료 수집에 소극적이다. 강제동원 관련 자료는 대부분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다. 필요한 유물이 있다면 국가기록원에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부족한 유물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은 지난 5월 처음으로 국가기록원에 자료를 요청했다. 개관 후 1년6개월 만이다. 역사관이 요구한 자료는 ‘북해도 고락가’. 이는 1942년 12월2일 ‘미쓰비시 광업’의 오유바리 광업소로 동원되었던 강삼술씨가 작성한 4음절 가사 형식의 글이다. 역사관 관계자는 “북해도 고락가 연구 이전에는 기록원 측으로부터 받을 만한 자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기록전문가협회 박종연 운영위원장은 “역사관이 국가기록원 내의 자료들을 가져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그래도 역사관은 자료를 요청해야 한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 한해 운영 프로그램 총 46회…강좌는 고작 3회뿐

박물관은 교육‧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 위원회는 지난 2009년 ‘강제동원 역사관 건립안’을 발표했다. ‘강제동원의 실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교육적 효과로 만들 수 있는 체험의 장으로 역사관을 구성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는 “부대시설 운영 및 교육 프로그램 연계 등으로 관람객을 늘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역사관 김석원 학예연구사 역시 “역사관은 체험‧휴게 등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융복합기관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지금 구상하고 있는 체험관들을 모두 설치한다면 역사관의 규모가 크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위원회 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역사관은 총 3회의 인문학 특강을 실시했다. 같은 해 국립춘천박물관의 경우 33회의 강좌를, 국립나주박물관은 34회의 강좌를 진행했다. 역사관은 한 해 운영비로 20억원을 받고 있다. 한 해 운영예산이 약 17억원인 국립나주박물관보다 많은 운영비를 받는 셈이다. 하지만 강좌 수는 턱없이 적다. 

교육 프로그램 연계로 인한 방문객 확보 역시 여의치 않다. 쿠키뉴스가 지난 21일 보도한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⑬ [단독] 혈세 522억 어떻게 흘러갔나…수상한 국립강제동원역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역사관을 찾은 인원은 7만5000여명이다. 위원회 자체 조사에서 예상했던 관광수요인 27만여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역사관 운영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1435명에 불과했다.

▲ 1년8개월 동안 통째로 비어있던 6층…방치된 부대시설도 문제

역사관이 전시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관은 당초 6층을 기획전시실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문제로 개관 후 1년8개월 동안 이곳을 비워놓았다. 결국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사라진 강제동원 피해자들’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 등의 기획전시는 모두 4층에서 진행해야 했다. 역사관 관계자는 “개관 당시 6층은 전시를 위한 조명이나 벽체 공사 등이 완료되어 있지 않아 바로 활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부산 시민들의 요청으로 검토 중인 ‘역사관 내 도서관 설립’ 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역사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피해자재단)의 이재철 국장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역사관 내부 시설을 새로 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부산남구청장에게 ‘역사관 지원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고 난색을 표했다.

부대시설의 활용도가 낮은 점 역시 문제다. 4층과 5층에는 교육 등에 사용되는 멀티미디어실 및 카페테리아가 있다. 그러나 두 공간 모두 책상과 의자만 놓여있는 상황이다. 행정안전부는 “역사관 관리‧감독 주체인 행안부에서 시설물 관련한 사항들을 점차 보완할 계획”이라며 “카페테리아의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공고를 통해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역사관이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역사관 위치 또한 (시민들의) 이용이 쉽지 않은 곳에 있어 (사업체들의) 입점이 잘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희, 심유철, 박효상 기자 aga4458@kukinews.com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spotlight@kukinews.com

영상=윤기만 adrees@kukinews.com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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