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는 끝났음에도 우리나라 시험은 얼마나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지, 여러 개의 예시 중 출제자가 정한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수업은 읽고 토론하고, 발표하기보다는 강의식 문제집 풀이 수업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우리나라 교육 혁신의 핵심은 평가개혁을 통해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표현하게 하는 교육으로 바꾸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교육에 영향을 많이 주고 있는 ‘자유학기제’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평가개혁을 통한 교육혁신을 위해 어떤 방향의 정책이 필요한지 많은 교훈을 준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지필평가를 없애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한 학기 중간, 기말고사와 같은 지필평가에 대한 부담을 줄여 교과교육보다는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하며 자신의 진로를 찾는 교육이 목적이다. 시행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교과서를 벗어난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수업과 UCC만들기, 신문 만들기, 포트폴리오 작성 등의 수업 방식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학기제가 수업 혁신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면서 여러 교육청에서 자유학기제를 넘어 자유학년제를 시도하고 있다.
학종은 자기 소개서와 교사 추천서, 학교 활동에 따른 다양한 활동의 기록을 참고해 전공 적합성을 파악하여 해당 학과의 적합 여부를 가리는 학생 선발 방식이다. 또 동아리 활동, 학생자치 활동 등의 활성화를 유도하여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목적을 두고 추진되었다. 학종이 실시된 이후 고등학교에 다양한 활동과 행사가 늘어났고 학생자치 활동도 활발해졌다. 학종이 고교 교육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입이라는 과도한 경쟁에서 학종이 평가도구로 활용되면서 자기소개서는 ‘자소설’이 되었고, 생활기록부에 하나라도 더 기록되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매우 커졌다. 교사는 생활기록부와 추천서를 작성하느라 수업을 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학종을 축소해 달라는 요구가 잇따른다.
지필평가를 없애 평가의 부담을 줄이므로 교사에게 교육 내용과 방식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자유학기제이다. 반면 평가의 부담, 즉 줄세우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두고 시험 형식만 바꾸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려는 제도가 학종이다. 두 가지 제도가 모두 평가개혁을 통해 교육혁신을 이루기 위한 제도였고, 자유학기제가 학종에 비해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평가개혁을 통한 교육혁신은 오지선다형에서 생활기록부로 평가방식의 변화가 아닌 평가를 통해 과도하게 줄세워 변별하는 역할을 그만두도록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혁신은 국가 미래가 달린 일이다. 교육혁신을 위해 평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평가개혁을 통한 교육 혁신이 변별 때문에 어렵다면 변별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변별을 포기하면 서열화 된 대학에서 입학 순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면 서열화 된 대학 체제를 바꿀 방안을 함께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을 능력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서열화 된 대학체제가 생기는 것이라면 학벌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변별력, 대학서열화, 학벌에 따른 차별을 고정 상수로 두고 거기에 맞춰 평가를 찾아왔다면 이제는 공교육을 바꿀 평가를 고정으로 두고 나머지를 바꾸는 교육 정책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이런 노력들은 진행되어 왔다. 채용, 임금, 승진 단계에서 출신학교로 차별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상태이다. 또 수도권 사립대 위주의 서열화 된 대학체제의 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3단계 방안 중 1단계 방안인 거점 국립대 통합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거점 국립대가 가칭 한국대로 통합되어 공동 선발을 하게 된다면, 프랑스와 독일과 같이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선발하는, 즉 자격고사 형태로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수능을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평가로만 활용한다면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스와 같이 깊이 있는 사고를 키우는 시험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 수업은 더 이상 지식주입을 위한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섯 개 중 하나 고르는 공부에서 토론하고 협력하는 수업이 가능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