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특성화학과 키워놨더니… 유사 간판 내거는 일반대

전문대 특성화학과 키워놨더니… 유사 간판 내거는 일반대

기사승인 2017-10-20 01: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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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학과 설치’ 일반대, 2015년 61곳→올해 125곳

취업 늦고 학비 부담 커져”vs“기능 외 연계 영역 충족”

대학평가, 충원·취업으로 재단… 정체성 살릴 대안 마련돼야 

충청 지역의 A전문대는 수년간 공들인 특성화학과가 이름만 조금 바뀐 채 인근지역 4년제 일반대에 잇따라 개설된 것을 보고 맥이 빠졌다. 인근 일반대는 A전문대가 지난 2011년 설립한 뷰티스타일리스트과와 학과명이 비슷한 화장품·뷰티생명공학부를 올해 개설했다. 이 일반대는 최근 항공서비스학과도 신설했다. A전문대는 2013년부터 항공관광과를 운영 중이다. A전문대 관계자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일반대가 취업률 등을 높이기 위해 잘 되는 전문대 학과를 모방하는 경우가 이어지는 것 같다”며 “현 상황을 놓고 보자면 전문대도 일반대도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전문대 특성화학과 키워놨더니… 유사 간판 내거는 일반대

전문대 특성화학과의 경쟁력을 확인한 일반대들의 유사학과 개설이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전문대의 고유 학과로 일컬어지던 물리치료학과와 치위생(학)과, 방사선학과, 실용음악 관련 학과, 조리 관련 학과, 뷰티·미용·메이크업 관련 학과 등은 이제 일반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5년 이 같은 특성화학과를 설치한 4년제 일반대학은 61곳이었다. 올해는 2배 이상 늘어 125개 대학이 특성화학과를 개설하거나 운영 중에 있다.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곽상도 의원(자유한국당)실이 전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까지만 해도 일반대에서는 볼 수 없던 항공운항서비스 관련 학과에 올해 기준 36개 일반대가 뛰어들었다. 뷰티·미용·메이크업 관련 학과를 운영하는 일반대는 2004년 14곳에서 현재 51곳으로 증가했고, 조리 관련 특성화학과를 설치한 일반대도 같은 기간 5곳에서 38곳으로 늘었다.

전문대 입장에서는 반가울 리 없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노하우를 가다듬은 생존 전략을 뺏기는 일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이대로라면 ‘특성화’라는 개념이 희석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한 전문대 관계자는 “장례지도과나 보석세공과가 잘 되면 유사한 과를 그대로 만들고 있는데, 이는 동네 빵집이 소문나면 큰 기업이 비슷한 레시피로 금세 빵을 만들어 이익을 남기는 것과 같다”면서 “학과를 신설하면서 전문대의 교수들까지 공공연하게 빼가는 등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해선 전문대교협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 소장은 “그간 일반대가 모방해 간 학과들은 학문적 탐구보다는 현장실무나 실습이 주로 필요한 분야로, 4년이라는 기간 동안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는 분야가 많다”며 “이로 인해 학생들은 취업이 늦어지고 2배가 훨씬 넘는 학비 부담까지 안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에 일반대들은 기능 및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 차별화 된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고 대응한다. 전문대 재학 기간 안에 다룰 수 없는 학문의 영역을 폭넓게 전달하고 심화 과정을 거쳐 전문성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충청 지역의 한 일반대 관계자는 “기술적 부분은 물론이고 그 외 취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영, 정책 등 연계 영역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반대의 유사학과 개설 경향이 학생 충원 및 취업률 등으로 재단하는 대학 평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학문 중심 일반대는 직업교육 기관으로 변모해 살 길을 찾고, 결국 직업교육 위주의 전문대는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산업계의 동반성장을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를 추진한 것처럼 대학이 고유 학과를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일반대와 전문대가 설립 취지를 살려 정체성을 확보하는 장기적 대안이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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