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처벌해 달라 거리로 나선 간호사들

기사승인 2018-01-22 13: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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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다시는 병원 임상현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며 뒤돌아섰던 한 간호사가 있다. 그녀는 퇴사 후 결혼은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틈틈이 부업을 할지언정 병원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고,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현장에서 실수를 용납할 수 없기에 나타나는 강한 규율과 압박, 시쳇말로 ‘태움’이라고 표현되는 일상이 연일 반복되는데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끼여 이리 저리 치이는 환경에 3교대 근무 등 열악한 환경까지,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최근 임상간호사로 돌아왔다. 다시금 태움을 당하고 좌충우돌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 나름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고, 자존감도 올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20년째 개선되고 변하지 않는 문제에 주변 간호사들과 함께 지난 20일 광화문 거리에 나섰다.


◇ “어렵다고 안 할거냐”… 간호환경 개선향한 외침

간호사연대NBT와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은 20일 광화문 광장에서 간호사와 간호대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집회와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들의 손에는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 위협받는 환자안전’,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하라’라는 문구를 담은 카드가 들렸다.

이들의 주장을 풀어서 정리하면, 현실적인 간호사 근무환경이 열악해 환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만큼 간호사 1명이 돌봐야할 환자를 줄이고 이를 법제화해 병원들이 이행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왜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연대와 연합이 지적한 임상현장에서의 문제점은 크게 ▶더블듀티 ▶임신순번제 ▶잦은 이직 ▶환자사망률 증가 ▶감염관리 실패로 5가지다.

먼저 간호사 인력기준이 낮아 1명이 15~20명, 혹은 그 이상의 환자를 간호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데다 ‘더블듀티’로 명명된 3교대 중 연속근무 상황이 왕왕 발생해 제대로 된 간호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력이 부족해 임신도 동료 간호사들과 순서를 정하고 시기를 조율해 원하는 시기에 할 수 없는데다, 순서를 어기고 임신을 하면 ‘죄인’이 되고 야간근무동의서나 권고사직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도 언급했다.

여기에 입사 1년 내 이직하는 신규간호사가 30%인데다 평균 근속연수도 짧아 병동 내 간호사 평균연력이  30대가 채 안 되는 현실에 대해 꼬집으며 높은 노동강도와 부족한 일손, 간호사의 숙련도 저하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 악화도 문제라고 봤다.

심지어 간호 인력이 적어 화장실 가는 시간마저 줄이며 업무를 수행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해 환자사망률이 오르고, 감염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거론하며 환경개선을 위한 강제적 조치들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임주현 간호사연대 회장은 “현행 간호등급제는 지키면 수당을 조금 더 주는 정도에 그쳐 병원에서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간호사 1명이 미국은 4~5명, 일본은 7명, 영국은 8.6명을 관리하는데 한국은 15~20명을 돌본다”고 한탄했다.

이어 “간호사 1인이 돌봐야할 환자의 최소, 최대 기준을 설정하고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병행한다면 적어도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건이나 감염관리 문제와 같이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전공의도 ‘개선’ 한 목소리… 하지만

이날 집회에는 간호사와 간호대생만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전공의들 또한 함께 했다. 인력부족 문제는 간호사나 의사 모두 마찬가지라는 문제의식에서다.

안치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환자 안전문제를 봤을 때 전공의는 1명이서 평소 70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만약 야간 당직 등의 상황에서는 200명의 환자를 홀로 관리해야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물리적으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일련의 문제는 환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외향만 키워온 의료제도와 체계 때문”이라며 “환자와 가장 가끼이 있는 간호사와 전공의들이 함께 나서서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식에서 자리에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 처벌해 달라 거리로 나선 간호사들
이와 관련 정부는 ‘시설, 장비’ 중심의 보상체계에서 ‘인력’ 중심으로 수가 지원체계를 개선하고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등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을 수차례 전했다.

세부적으로는 야간전담 간호사제 도입, 시간제 간호사 활성화, 간호조무사 인력배치기준 상향 등을 통해 부족한 간호 인력을 충원하고 환경을 개선의 여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간호사협회와 조무사협회는 배치기준 등 업무영역을 두고 날을 세우고 있다. 처우나 환경개선을 위해 병원의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하지만 재정적 문제 등을 이유로 미온적이다. 그렇다고 정부 차원에서 강제화하거나 홀로 의료서비스 체계를 개선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임 회장은 “어렵다고 안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야간전담제나 파트타임 강화 같은 개선이 아닌 현실에 와 닿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적어도 인력기준의 법제화를 통해 최소한의 환경조성을 위한 기준은 세워야 환자도 간호사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간호사연대와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은 20일 이어 오는 2월 3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열고 간호사들의 현실을 알릴 예정이다. 연대 관계자는 “20일와 2월 3일 이후에도 현장 간호사와 간호대생을 비롯해 여러 관심있는 이들의 자유로운 참여로 집회가 이어질 것”이라며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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