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박항서가 던진 화두, 한국은 ‘변방’에서 벗어났습니까?

박항서가 던진 화두, 한국은 ‘변방’에서 벗어났습니까?

기사승인 2018-01-29 17: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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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일으킨 신드롬은 우연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국을 4강으로 이끌 당시 박항서 감독은 지근거리에서 ‘변방의 축구’가 가야할 길을 직접 보고 들었다. 이제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과연 ‘변방’에서 벗어났는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27일(한국시간) 중국 창저우의 올림픽 센터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대2로 패했다.

결승전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 함박눈은 두 팀 모두에게 달갑지 않다. 그러나 좀 더 ‘악재’가 된 건 베트남이다. 앞서 8강과 4강에서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했던 베트남 입장에서 추운 날씨와 미끄러운 눈 바닥이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축구엔 변명이 없었다. 달리고, 빼앗고, 공을 차는 모습에서 승리를 향한 독기를 엿볼 수 있었다. 확실한 동기부여와 선수들의 의지, 그리고 강인한 체력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투지어린 돌진은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 때까지 계속됐다. 베트남 선수들은 경기 후 차가운 눈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야말로 ‘방전’이 된 모습이었다.

‘박항서’라는 세 글자 이름이 2018년 새해 베트남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현지 언론은 베트남이 8강에 오른 뒤부터 하노이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박항서’를 외치는 이들로 물결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기 후 베트남 시민들은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를 흔들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야말로 베트남 전역이 ‘박항서 앓이’ 중인 셈이다. 

베트남으로 돌아온 선수단은 국민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축구에서 할 수 있음을 보여준 데에 깊은 감동을 받은 모습이다. 베트남 선수단은 2층 버스에 올라 타 공항에서 하노이 시내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긴 행렬 양 옆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팬들의 ‘씬 다 따(감사합니다)’가 울려 퍼졌다. 베트남 정부는 박항서 감독에게 최고 등급 훈장인 3급 노동훈장을 수여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박항서를 만나기 위해 5시간을 기다렸다. 흔한 일이 아니지만 큰 기쁨을 느꼈다”며 환대했다.

박항서 매직은 베트남의 ‘유소년 프로젝트’와 합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호앙안지안라이 그룹과 빈 그룹 등 주요 자본들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 손을 잡고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지난 10여년 동안 체계적으로 축구 유망주를 길러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개최된 20세 이하(U-20) 월드컵 본선행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낸 ‘젊은 베트남’은 이번 U-23 챔피언십에서 박항서 감독과의 시너지로 결승에 진출하는 최고의 성과를 일궈냈다.

박 감독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히딩크를 보좌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히딩크 감독은 체력강화훈련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히딩크 트레이닝’의 핵심은 전력질주 후 체력 회복시간을 줄이는 것에 있다. ‘한 발 더 뛰는’ 축구를 하기 위한 집중 훈련이었다.

[옐로카드] 박항서가 던진 화두, 한국은 ‘변방’에서 벗어났습니까?

베트남 축구는 더 이상 아시아 약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축구는 앞으로 끈질길 것이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과 2년 계약을 체결하며 U-23 대표팀과 성인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적어도 이 동안 박 감독의 축구철학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입장에서 박 감독의 선전에서 느껴지는 바가 분명히 있다. 2002년 4강 신화 후 한국축구의 콧대는 꽤 높아졌다. 박지성을 비롯해 손흥민, 기성용, 황희찬 등 유럽파들이 다수 생겨났고 앞으로도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들이 유럽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은 ‘현 주소’를 짚는 것에 무뎌졌다.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실제로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위태롭다. 한국은 지난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중국, 시리아,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등에 고전을 거듭한 끝에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중국이 우즈벡을 이기고 이란이 시리아에 비기지 않았다면 한국은 조4위로 탈락했을 것이다. 대표팀의 미래를 가늠할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이번 AFC U-23 챔피언십에서 어느 하나 기대를 갖게 할 만한 성과 없이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8월 아시안게임까지 불과 7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이들의 우승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K리그의 경우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대회 개편 이래 처음으로 8강에 한 팀도 들어가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강호를 만난다. 한국의 현 피파랭킹은 59위로 같은 조의 독일(1위), 멕시코(17위), 스웨덴(18위)보다 한참 뒤쳐져있다. 한국은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 중 30번째 순위에 올라있다. 뒤에는 개최국 러시아(62위)와 사우디아라비아(65위)가 있다.

현재로선 피파랭킹 격차를 단순 ‘숫자놀음’이라 생각하긴 힘들다. 한국이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만나는 상대들은 하나같이 피지컬에서 한국을 압도한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은 12년 만에 월드컵에 올라왔다. 이 때문에 간절함이 있다. 이태리를 압도한 이들은 힘과 조직력, 투쟁심에서 모두 강력하다. 한국이 이기기 힘든 상대”라고 평가했다. 독일에 대해선 “산술적으로 승점 0점으로 접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멕시코 역시 “개인 기량에서 남미 선수에 떨어지지 않는다. 최근엔 장신 센터백이 보강되는 등 한국이 공략할 지점이 없어졌다”고 했다.

베트남은 이번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들에 연달아 ‘도전’했다. 한 발짝 더 뛰었기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한국도 이런 모양새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변방’이다. 월드컵 바탕엔 ‘체력’이 있어야 한다.

신문선 교수는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도전자다. 체력에 대한 집중 훈련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팀에 대한 전력 분석도 철저히 해야 한다. 이 모두를 빈틈없이 하면 이길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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