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재기해’…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한 마디

‘재기해’…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한 마디

기사승인 2018-07-1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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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재기해’…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한 마디재기하다. 

‘역량이나 능력 따위를 모아서 다시 일어서다’ ‘다시 기록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나 최근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는 ‘제3회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수의 참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재기해”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또 이날 시위에는 ‘곰’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가 등장했습니다.

‘재기해’는 지난 2013년 한강에 투신해 숨진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성 대표처럼 남성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의미가 담겼죠. ‘곰’은 문 대통령의 ‘문’을 거꾸로 뒤집은 것으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문 대통령에게 ‘투신하라’는 뜻입니다.

여성들이 문 대통령에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의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더 강력한 수사가 이뤄졌다는 ‘편파수사’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재기해’뿐 아닙니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태일해’ ‘주혁해’ ‘종현해’ 등의 표현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 교통사고로 숨진 배우 김주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샤이니 종현의 이름을 따온 표현입니다.

일각에서는 남성을 향한 비난 수위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조롱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죠. 또 표현의 자유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할 수 있는 자유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해당 표현에 대한 생각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강연재 변호사는 “곰은 왜 그게 혐오발언인지 모르겠고 아주 귀여운 수준 아닌가 싶다”며 “옛날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다 쥐 아니면 닭 이런 것들로 표현됐었다”고 말했습니다. 신지예 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여성들이 당해온 것에 비해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두둔했습니다.

반면 이준석 전 바른미래당 서울 노원병 후보는 “돌출행동을 옹호하기 보다는 절제시키는 것이 리더 역할”이라며 신 전 후보를 비판했습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문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자살’로 속죄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었느냐”며 “‘문재인 재기해’는 젠더 이전에 인간으로서 용납해선 안 되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모든 여성운동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계 내부에서 자정을 위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네티즌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이런 식이면 일베와 다를 게 없다’ ‘눈 가리고 아웅’ ‘결국 또 다른 갈등과 차별을 낳을 뿐’ 등의 반응을 보인 것이죠.

시위를 주최한 ‘불편한 용기’ 운영진은 논란이 커지자 해명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명으로 오히려 논란을 키웠죠. “미러링은 미러(mirror) 즉, 거울이 비치는 본래의 단어가 사라진다면 미러링 된 표현도 당연히 사라질 것”이라며 “‘문재인 재기해’ 발언의 시작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최 측은 “재기하라는 말은 ‘문제 제기’로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습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부조리함과 고통을 개선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표현 방식이 부적절하다면 주장 자체도 부적절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정당한 취지의 집회를 그릇된 표현으로 오염시키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도가 지나친 혐오 표현으로는 여론의 공감대를 얻기 어렵습니다.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만이 정답일까요. 

김도현 기자 dobes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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