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공사가 사라진다? 3D 프린팅 기술의 역습

치기공사가 사라진다? 3D 프린팅 기술의 역습

기사승인 2018-08-12 01:00:00

# A(33·)는 평소 한 가지 콤플렉스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음침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삐뚤빼뚤 고르지 못한 치열 때문에 잘 웃지 않아서다. 그 때문인지 연예도 못하는 것 같다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치과를 찾아가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어 교정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희소식이 들렸다. 얼마 전 집 주변 대형마트에 한 치아교정기 전문제조업체가 치아 3D스캐너를 설치했다는 광고를 접한 것.

A씨는 일이 끝난 늦은 시간 한걸음에 마트를 찾아 치열을 스캔했고, 다행히 치아를 빼는 등의 복잡한 교정 없이 투명교정 장치로 치열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3D프린터로 제작된 교정기를 받아 콤플렉스를 고칠 수 있었다.

A씨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가능할까

치과전문의들과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가능하다. 그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는 현실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관련법 상 허가되는 범위 내에서 A씨와 같은 교정치료가 지금도 가능하다.

3D스캐닝과 프린팅, 치아교정 전후과정을 단계별로 나눠 교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설계할 수 있는 컴퓨터프로그램이 일련의 치료를 가능하게 했다. 국내 한 치과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3D프린터와 프로그램을 치과치료에 접목해 활용하고 있었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W화이트치과 김희철 원장(사진)은 업계에서 인정받는 3D프린팅 전문가다. 직접 만난 김 원장은 치아를 깎고 모양을 다듬는 등 모든 일이 조각을 하듯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분야를 표준화하고 환자맞춤형으로 만들 수 없을지 고민하다 이 길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법과 규제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가능한 영역이 무궁무진하며, 기술과 장비가 고도화될수록 절차는 간소해지고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인건비 상승과 환자편의, 환자맞춤을 강조하는 세태에서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분야가 교정분야라고 덧붙였다. 교정은 시작부터 환자의 요구와 맞춤, 생활의 편의 등을 고민해야하는 치료인데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아에 붙여 철사를 조금씩 움직이며 치열을 바로잡는 브라켓부터 최근 각광받고 있는 투명교정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발전했고, 요즘은 3D프린터를 활용해 치과에서 직접 재료와 주변재료를 제작하고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김 원장은 “3D프린터와 기술의 발전으로 치과의사와 기공사의 손을 수차례 거치며 6~7단계에 걸쳐 이뤄지던 작업을 3단계로 압축할 수 있게 됐다. 환자가 진료를 받고 교정을 시작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도 과거 일주일에서 15~20분으로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첫 방문에서 진료상담을 하고 교정을 결정한 후 시술에 들어가 마취가 풀리기 전에 교정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통해 교정 후 예측되는 결과까지 환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어 만족도와 순응도도 높다고 덧붙였다.

하루가 다른 변화 속 국내 현실은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술의 발전을 법과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술은 이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아갔지만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쳐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신기술을 도입해 환자가 치과를 찾아 치과의사가 치아상태를 진단하고 본을 뜨거나 대략적인 스케치를 치기공소로 제작을 의뢰하고 다시 받아보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환자 치료에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이 절반이하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열악한 기공소 내 환경과 기공사 등 인력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인력수급에 애를 먹고 있지만 규제정책에 막혀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직접 가치(가짜치아)를 깎는 일을 하는 기공사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공사들이 하고 있는 업무도 치과 내에서 3D프린터가 대신하거나 장비를 갖추기 어려운 치과의원들이 공동으로 운영 혹은 의뢰하는 기공소에서 교정기 등을 컴퓨터 상으로 보다 정밀하게 디자인하는 업무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일련의 치과 생태계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정책이다.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임플란트 등을 허가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현행법 상 김 원장이 상상하고 치과계가 내다보는 미래를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장 교정기와 유사하지만 치료용이 아닌 치아미백용으로 쓰이는 마우스피스 같은 경우에도 국내법 상 허가받지 못한 제조기업이나 일반 판매가 어려운 실정이다. 건강한 미소와 정신을 만들어 준다는 양악수술이나 임플란트 등 고도의 치료에 쓰이는 재료에 대한 규제는 더더욱 까다롭다.

이에 정부도 변화를 따라가려는 여러 시도와 논의들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3D프린팅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한적인 점들이나 변화하는 미래상을 모두 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부처간 장벽도 여전하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치아기공소 등에서 제작하는 가치 등은 기공물로 분류돼 개별 허가없이도 치료재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관리감독 권한은 보건복지부에게 있다. 반면, 제조업체 등에서 만들어지는 완제품은 의료기기로 개별 허가를 받아야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미래 신기술과 제품에 대한 허가 및 심사, 관리를 담당하는 곳은 식약처로 일원화돼있지만, 의료법 등의 개선이나 개정 등은 또 복지부에서 관장하는 사항이다. 당연하지만 업무협조가 잘 이뤄질 때에야 규제나 법·제도 개선이 가능한 셈이다.

실제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 내 의료기기정책과에서 미래기술에 대한 정책방향을 정하고 관련 부서에서 허가와 심사 기준 등을 만들어 가이드라인과 같은 형태로 배포한다“3D프린팅과 같은 신기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든 기술발전에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업계의 요구와 산업동향 등을 살펴 지속적으로 개선해가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나 기공물의 관리감독 등은 복지부 업무라며 “3D프린터를 이용한 임플란트의 허가와 치과에서의 직접 제작, 교정장치의 우편거래 등은 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처럼 보인다. 검토가 필요하다고 단서를 달기도 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실현 가능하지만 실현되지 못한 영역에 대해서도 조금은 넓은 범위에서 허가를 해주고 있어 유연적이지만 의료기기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거나 새로운 형태에 대해 어떻게 허가를 할지, 관리는 어떻게 이뤄질지 고민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부연해 아직은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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