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병원과 약국을 따로 가게 됐나

왜 우리는 병원과 약국을 따로 가게 됐나

[위기의 의약분업-①] 의사와 약사, 국민과 정부 모두 불편한 미완의 제도

기사승인 2018-10-09 07:00:00

<편집자주> 정부는 2000년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란 표어도 내걸고 ‘의약분업’을 시행했다. 필요한 만큼만 약을 먹고 더 나은 효과를 얻도록 약을 의사가 처방을 하고, 약사가 조제하도록 역할을 이분해 서로를 도와 환자를 이중으로 돌보라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제도시행 당시를 기억하거나 전·후를 모두 경험한 이들은 의약분업제도가 썩 달가운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제도의 직접 당사자인 의사나 약사, 국민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이나 관련분야 학자들도 만족스럽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더 나은 나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구성원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제도 시행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선을 위한 시도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제주도에 홀로 살고 있는 79세 강영채 씨는 고질적인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거동이 쉽지 않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을 가 진통제와 관절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다. 병원을 가지 않으면 못 산다고 할 만큼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데 십수분을 걸어 하루에 2~3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중심가 병원을 들려야한다. 그마저도 병원에서 약을 바로 받지도 못하고 약국까지 가서 받아야 한다”면서 “옛날(의약분업 전)이 편했다”고 회상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제주도 한적한 곳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오재훈(43) 씨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오 씨는 “의약분업 전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현 상황만을 놓고 봐도 당연히 불편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이 갖춰져 있고 자동조제기가 약을 보다 정밀하게 포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식후 30분 후 복용하라는 말을 들으러 약국에 간다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라고 평했다.

이 외에도 평소에 감기에 자주 걸린다는 A(여·32) 씨나 편도선이 자주 붓는다는 B(남·37) 씨도 현행 의약분업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과거 단골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으면 뚝 떨어졌던 감기나 금방 가라앉았던 편도염이 더 오래가고 잘 낫지도 않는다는 불만이다.

◇ 의약분업, 의료대란 불러온 ‘실패한’ 정책?

왜 이런 불편한 제도가 만들어진 걸까.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선되거나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걸까. 이에 대해 의약분업 당시 제도가 시행되는데 기여한 이들이나 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의사와 약사간의 극렬한 대립 때문이라고 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은 정말 좋은 제도다. 서양 선진국에서는 모두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서양 의학이 접목된 후부터 의약분업이 논의됐고, 1953년 약사법이 제정될 때 의약분업의 실시원칙을 법으로 정했다. 그리고 반세기만에 도입됐다”며 “그 배경이 어떻든 일단 제도가 시행됐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수천년 역사의 전통의학에서 내려온 상식과 관행을 깨고, 의사와 약사는 물론 국민의 의료이용행태를 바꿔야하는 큰 변화인 동시에 의약품의 처방권 즉, 의약품의 사용결정과 투약과정에서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을 누가 가져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제도인 만큼 의사와 약사 두 전문가 집단의 충돌이 불가피한 정책이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의약분업의 실시를 위한 논의과정에서 쟁점은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와 그에 따른 손실 보존방법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약과 아닌 약을 나누고, 주사제를 대상에 포함시켜야할지 여부 ▶처방은 성분명으로 할지 상품명으로 할지 ▶의약분업 적용대상 의료기관 범위 ▶제도 적용 예외지역이나 환자의 범위 등이었다.

그리고 일련의 쟁점을 두고 의료계는 8번 의료기관의 문을 닫아걸고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약국 또한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 당시 언론들은 이를 두고 ‘의료대란’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의 집단투쟁을 비판했다. 하지만 의·약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해야만 했던 일’이라고 표현했다.

1994년 약사법 개정으로 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정책적 방침이 결정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이를 지지하고 지원한 여야정당, 여론을 움직인 시민사회단체와 보건의료계 개혁파에 의해 시행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능의 권리와 역할,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의료대란이라 불린 사태로 인해 의약분업의 추진방향이 상당부분 달라졌고, 그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파탄지경에 처했고, 제도 시행 후 발생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반성 혹은 사과 성명이 발표됐다. 

◇ 불편한 제도, 처음 구상은 달랐다?

1998년 12월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가 발표한 바람직한 의약분업 실시방안의 주요내용은 모든 의료기관의 외래조제실을 폐쇄하고, 의사는 상품명으로 처방을 시작하되 일반명(성분명)으로 처방을 확대해야한다고 제도를 설계했다. 약사의 임의조제는 원천적으로 금지하되 대체조제는 허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의약분업은 오랫동안 내려온 우리 국민의 의료이용 관행과 이러한 관행을 토대로 시행되고 있는 의약제도 및 의료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관점에서 사전 치밀한 준비 없이 시행한다면 상당한 부작용이 야기될 것”이라며 “우리나라 의료제도와 여건이 의약분업을 실시할 만큼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진단하며 추진반대의 기치를 내걸었다.

특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고 있었던 국가적 경제상황이나 국민적 고통을 외면하고 의약분업 제도도입에 따른 5300억원 가량의 보험재정 추가부담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가구당 5만여원의 보험료 인상을 유발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불만을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와 의료기관 및 약국의 경영 악화, 약화사고에 따른 책임소재, 국민의 시간적·경제적 손실, 미미한 정책효과 등을 우려하며 제도시행에 앞서 의약분업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전 기반조성 작업이 선행돼야한다고 강조하는 등 정부의 정책방향의 선회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의료기관의 파업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는데 대한 국민 불편과 부담을 우려해 ▶철저한 임의조제 금지 ▶제한적 대체조제 허용 ▶상품명 처방 원칙 ▶주사제의 의약분업 예외 대상 포함 등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받아들이며 현재의 제도와 유사한 형태의 불완전한 의약분업 형태로 자리잡게 됐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차흥봉 전 장관은 “의약분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약계가 모두 동의했지만,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에 대해서는 두 집단 간 이해관계가 크게 대립했다”며 “첨예한 이해관계로 인해 의약분업의 모델이 계속 요동치고 달라졌다. 결국 의료계의 입장이 많이 반영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가장 큰 변화는 대체조제의 가능성을 열어둔 5.10 합의의 원칙이 크게 변질되고, 의료대란과정에서의 투쟁과 반목으로 인해 상생을 위한 지역의약분업협력회의는 유명무실해지고 개별 의료기관과 약국 간 담합은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등 의사와 약사가 상대 직능을 상호 존중하고 의약품의 사용에 대해 상호 협력하는 기본원칙이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이규식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01년 보험급여비가 전년 9조321억원보다 무려 46.6%가 증가한 13조2447억원을 기록하며 건강보험제도 도입 이후 사상 초유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며 “국민들의 부담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고,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2번의 공식적인 사과와 2번의 비공식적인 사과를 하도록 만들었다”고 풀이했다.

실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11월 8일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이한동 국무총리 대독으로 “의약분업으로 불편과 부담을 국민들에게 주게 한 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내용을 국민에게 전했다. 이어 2001년 3월 1일 국민과의 TV대화를 통해서도 “의약분업에 대해 잘 몰랐고, 사전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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