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보다 못한 간호조무사, 전태일이 그립다?

기사승인 2018-11-14 17: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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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들이 48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노동조건 개선을 세상에 외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사망한 전태일 열사를 그리워하는 모습이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처우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회장 홍옥녀, 이하 간무협)와 노무법인 상상이 지난 8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10일간 전국의 간호조무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들의 업무환경과 근로여건, 대우가 최근 높아진 아르바이트생 처우보다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태조사에 응답한 5803명의 간호조무사 중 2928명(50.46%)은 30인 미만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이중 절반가량인 1440명(49.18%)은 4인 이하 의원급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정규직이다. 하지만 그 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한 노무법인 상상의 홍정민 노무사는 노동환경 측면에서 간호조무사는 ‘취약계층’이라고 평했다. 정규직으로 채용되지만 언제든 해고통지를 받을 수 있으며 가장 기본인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거나 교부받지 못하는 경우가 44.9%에 달했다.

최저임금인 월 157만3770원 이하를 받는다는 이들은 전체의 61.8%에 이르렀다. 그마저도 휴일수당, 고정적 시간외 근무수당, 근로시간 단축, 상여금이나 식대와 같은 각종 복리후생비 삭감 등 의료기관의 꼼수로 5~10만원이 오른 것이 전부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약 20만원의 월급인상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은 간호조무사에게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따지지도 못한다. 본인이 매달 받는 임금의 명세서를 받는 이들도 53%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체계가 갖춰진 병원급 이상을 제외한 의원급에서는 20%가 채 안 됐다. 

임금이 어떻게 산정되는지를 몰라 상담도 못 받는 실정이다. 평균근속기간은 4.6년으로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근거한 근로자 평균 근속기간 6.3년에 한참 못 미쳤다. 이직이 빈번히 이뤄지고 그마저도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풀이다.

심지어 휴게시간과 식사시간은 평균 48.1분과 41.1분으로 법에서 정한 기준은커녕 2017년 실태조사결과 평균 54.2분과 40.7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주 5일, 40시간 근로, 연 15일 연차는 꿈이었다. 주 6일 근무에 공휴일 근무가 당연시되고, 휴가는 평균 6.7일에 불과했다.

휴일에 쉬지 못하고 점심시간이나 휴식, 휴가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고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대가도 부족한 셈이다. 미사용휴가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비율은 39.9% 밖에 없었다.

성희롱이나 폭언·폭행 등 폭력에 노출되는 이들도 많았다. 전체 응답자의 23.9%는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 이는 2018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조사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서 조사된 13.3%보다 10%p 이상 놓았다. 폭언 등 폭력 피해도 29.9%에 달했다.

반면 폭력피해에 대한 대처는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나 제도적 대응을 했다는 이들은 성희롱의 경우 1.2%, 폭력은 1.4%에 그쳤고, 64%와 66.5%가 그냥 참고 넘겼다고 답했다. 마땅한 구제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간호조무사협회 전동환 기획실장은 “간호조무사는 간호인력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나 다르지 않은 일자리에 누가 자부심을 갖고 사명감으로 환자의 건강을 돌볼 수 있겠느냐”면서 최소한 7가지 사안은 지켜지거나 실현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근로계약서 표준화 및 임금명세서 교부 법제화 ▲시간 외 근무수당 정액지급방식 개편 ▲휴게시간 등 보장 및 적정 산정 ▲최저임금 나아가 경력과 역량, 업무에 합당한 임금 보장 ▲이를 위한 수가도입 및 임금반영 ▲의료기관의 노무관련 기본준수사항 성실이행 ▲간호조무사 등에 대한 노무교육 의무화 등이다.

한국공인노무사회 소민안 부회장도 실태조사나 상담경험을 토대로 간호조무사에 대한 근로환경 및 처우가 법률 위반소지가 많다고 거들었다. 간호조무사를 구속시키기 위해 근무규율 관련 서약서를 작성하라거나, 단순노무업종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적용하지 못하는 수습기간 중 감액조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하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 “간호조무사만 힘들다? 의사도 힘들다”… 근본적 의료개혁 필요해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간호조무사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경영상 어려움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주최한 ‘2018년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의료기관 개·폐업률과 의사들의 근로환경 등을 근거로 보다 근본적인,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제도적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 이사는 “의사의 삶은 자영업과 전문가의 삶이 동반된다. 간호조무사가 주6일을 일하며 휴가를 가지 못한다고 하면 의사도 그 시간에 일을 한다. 오히려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고 의료기관을 경영한다”면서 “의료제도가 우리를(의사와 간호조무사) 그렇게 만들고 있다. 중소병원은 이미 폐업률이 개업률을 30% 이상 상회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나아가 “죽어라 일하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되도록 해 놨다. 하루에 70~100명을 봐야 운영이 되도록 (의료제도를) 만들어놓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돼 국민건강보험공단 향해 수가인상 해달라고 했더니 콧방귀 뀌고 인상 안 해줬다”면서 “이 상황에서 직원들 복지를 어떻게 개선하느냐. 정부와 국민에게 힘을 합해 요구해야한다”고 역으로 호소했다.

대한병원협회 김병관 미래정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진지한 어조로 “2년 동안 토론에 나왔지만 내년엔 거의 확실히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내년에는 병원의 문을 닫으려 한다. 204명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문을 닫아야 적자나마 면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대부분의 중소병원의 현실이 어렵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전했다.

이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관리료차등제 적용에 있어 병동 간호인력에 대한 수가보전이 없어 속된 표현으로 간호조무사는 ‘투명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간호조무사가 투명인간 취급받는 현실은 단언컨대 의료법에 있다. 적정인력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전제돼야 진료환경을 꾸려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알바보다 못한 간호조무사, 전태일이 그립다?

덧붙여 “병원계 현장은 척박하다. 국가 통제하의 수가구조 속에서 강제 의무화하는 법안과 규제가 늘어가고 의원급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무한경쟁의 약육강식의 의료서비스 시스템 하에 방치돼 수익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상호보완과 견제 속에서 상생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 개선이 최우선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의 생존이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보건의료인력의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특단의 대책을 시급히 시행해야 어렵게 연명하는 의료기관을 소생시킬 수 있다는 긴박함이 묻어나는 구호요청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와 달리 위기감을 크게 느끼진 않는 분위기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곽순헌 과장은 “정부 예산을 책정해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인력의 근로환경과 외부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와 장단기 계획을 수립하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에 반영하고, 예산을 반영하거나 입법화를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운을 땠다.

다만, “근로환경에 의한 인력수급 문제가 발생하거나 의료기관 내 성폭력, 폭행 등 인권침해적 문제, 환자안전과 직결된 문제 등이 발생할 경우 전공의 특별법과 같은 적극적인 개입해 필요한 규정이나 제재규정을 마련할 것”이라며 “수가 또한 적정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료계와 계속 협의해 국민편익 차원에서 노력해나가겠다”고만 답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와 올해 병원업종 전반에 대한 근로감독과 자율개선사업을 진행했다”면서 “근로환경 문제가 계속 지속됐고, 근로감독 결과 공짜노동이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문제, 성희롱 문제 등 근로기준법 위반사항 등 다수를 적발해 시정지시 등 후속조치가 이뤄졌다. 추가로 기초적인 노동질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의료계를 오히려 압박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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