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약이나 치료법이라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더 강한 약효를 가지고 있다는 해외 임상결과가 나왔다면 바로 적용이 가능할까. 서양인들에게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면 안심하고 사용해도 되는 걸까.”
일반 환자나 시민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갸웃하며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는 미국 FDA 등 해외 기관의 승인과 유수 학회 등에서 발표하는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국내의 승인이 한 발 늦다고 타박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국 등지에서 직접 구매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많이 쓰이는 약물이나 치료법이라고 한국인에게 안전한 것은 아니며, 서양인에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동양인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론 인종 간 차이로 인해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도 경고한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치료법이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에 쓰이는 경우에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국내의 경우 대부분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을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이를 복제한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대체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우호적 반응을 보이는 만큼 이를 취급하고 사용하는데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심근경색증’이다. 심근경색증은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이며 단일질환으로는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병이다. 더구나 사망률 1위인 ‘암’과 달리 발병과 함께 생명이 경각을 달리며 병원까지 이송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치료를 위한 준비시간이 부족하거나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치료재료나 치료제, 치료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유럽 등지에서 모두 건너온 것들뿐이다. 국내 심근경색 환자가 해외와 달리 계속해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 해외 임상 결과만으로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간의 차이를 반영하기 위한 여러 장치나 절차,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때문인지 최근 국내 심장내과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개선바람이 불고 있다. 한 해에 최소 3~4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국가단위 급성심근경색 환자등록사업(KAMIR, The Korea Acute Myocardial Infarction Registry)이 2005년부터 시작됐다.
전남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정명호 교수(사진)가 3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등록사업을 시작한 이후 40개 의료기관으로 확대돼 현재까지 약 7만명의 환자정보가 등록·관리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70~80년대부터 정부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을 민간에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논문만 놓고 보면 232편이 출판돼 앞서 시작한 미국이나 유럽 등의 환자등록사업을 뛰어 넘었다. 서양에 비해 40년 가까이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도출하며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를 규명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 교수 등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환자들은 서양인에 비해 콜레스테롤과 고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HDL) 낮고, 중성지방이 높은 양상을 보인다.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앓고 있는 심근경색 환자들 또한 더 많다.
일련의 인종 간 차이로 인해 약효가 강한 항혈소판제(Prasugrel)에 대한 반응도 서양인과 한국인 간에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이나 미국 심장학회의 지침에 따라 서양인과 동일한 용량을 사용할 경우 임상적인 효과에서 차이는 크지 않지만 예기치 않은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는 크게 증가했다.
스텐트 시술의 경우에도 차이를 보였다. 해외 지침은 심부전 발생 시 빠르게 시술을 하라고 권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약물치료를 통해 상태를 안정시킨 후 시술을 하는 것이 결과가 더욱 좋다고 조사됐다.
이와 관련 정 교수는 “KAMIR 연구결과 최근 개발된 항혈소판제의 경우 한국인에게는 약효가 너무 강해 출혈이 발생하고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면서 “인종 간 차이를 감안해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거나 고위험군에 한해 선택적으로 사용하자고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부전 치료에 대해서도 “고령이거나 심장 혹은 신장기능이 떨어지는 이들에게는 빨리 수술하는 것이 결과가 더 안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경우 심혈관질환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스타틴(statin)’ 계열의 약물의 부작용인 당뇨발생률의 경우에도 인종 간 차이에 따라 약효나 부작용 발현이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 교수와 함께 한국인 급성심근경색환자를 대상으로 스타틴의 심장사건 발생률과 혈당에 대한 안전성을 연구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김기식 교수는 “피타바스타틴이 여타 스타틴계 약물보다 주요 심장사건 발생률을 낮추고 혈당을 개선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순환기내과 나승운 교수가 참여한 스타틴 계열 약물에 따른 당뇨병 발생을 비교한 연구에서도 피타바스타틴이 아토르바스타틴, 로슈바스타틴 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당뇨발생률을 낮춘다고 보고됐다.
이에 정 교수는 “약물에 대한 반응이나 심장수술에 대한 반응이 서양과 차이를 보이는 것을 등록사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국 KAMIR가 중심이 돼 일본과 중국이 함께 ‘동양인 심근경색 치료지침’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일본과 동시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 교수는 국가 차원의 환자등록사업을 이어나가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인의 체질을 밝히고 치료방법을 개선하는 학술적 변화뿐 아니라 한국인에게 적합한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등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했다.
그 일환으로 민간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연구에 대한 정부지원과 전라남도 장성에 국가차원의 심혈관질환 종합관리대책과 정책방향을 정할 ‘국립심뇌혈관센터’ 건립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여기에 국가차원에서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심근경색증을 유발할 흡연 등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한 의지를 가져야한다는 점도 더불어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