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은 정직한 곳이다. 노력한 자는 떠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남아야 한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치열하다. 11일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사람들은 365일을 그렇게 살고 있었다. 합격에 전부를 건 사람들. 그들에겐 이번 추석도 ‘평일’에 불과했다.
“연휴는 평일일 뿐”
노량진에 가면 운동복 차림에 가방을 메고 슬리퍼를 신은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손에는 책과 물병이 하나씩 들려있다. 십중팔구 수험생이다. 추석연휴를 하루 앞두고 모두가 들떠 있지만 수험생들은 달랐다. 차분했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조용히 자기공부만 할 뿐 말 한 마디 섞는 걸 보지 못했다. 이날은 7급 지방공무원 필기시험이 정확히 한 달 남은 날이었다.
올해는 지방공무원 응시생들에게 ‘기회의 해’다. 사람을 많이 뽑아서다. 정부 계획에 의하면 올해 지방공무원 채용인원은 3만3060명이다. 지난해보다 28.7% 늘었다. 소방·사회복지·생활안전 등 현장중심 인력을 충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소방·방재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지하철 노량진역과 인접한 고층 오피스텔. 이 바닥에서 유명한 고시학원이다. 이곳 4층에 위치한 종합반 이른바 ‘소방지옥반’ 강의실은 이른 아침부터 수험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습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심지어 강의실 밖에서도 책을 붙들고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이방인’은 기자가 유일했다.
수험생에게 접근하기란 쉽지 않았다. ‘건드리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가 느껴졌다. 캔 커피를 미끼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단 번에 거절당했다. 6층 임용고시 반에서 가까스로 한 명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의 손에는 보약 한 팩이 들려 있었다.
상담교사 임용을 준비 중이라는 이모(가명)씨는 “오전 7시 반부터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위기도 치열하고 아무래도 경쟁이니까 열심히 한다”며 “연휴는 평일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향이 청주인데 아는 사람들은 다 안 내려가고 공부한다. 주위에서 안 쉬고 공부해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며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고 웃었다.
학원가에서는 연휴를 반납한 학생들을 위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한 과목을 하루에 마스터하는 12시간짜리 마라톤 강의가 개설됐다. 스터디룸과 카페이용권을 묶은 ‘한가위 상품권’도 등장했다. 연휴 내내 문을 여는 독서실도 있었다.
학원을 나서는 데 지하통로에서 재미있는 벽보를 발견했다. ‘공무원증 거울’이다. 거울을 보면 벽에 내 얼굴이 박힌 공무원증이 떡 하니 생긴다. 기자도 기념 삼아 사진을 남겼다. 매일 이곳을 오가는 수험생들은 이 거울을 보며 희망을 품을 것이다. 합격이라는 희망을 말이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