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도 눈치봤는데…배우자 출산휴가 10일, 누가 당당히 쓰나”

“3일도 눈치봤는데…배우자 출산휴가 10일, 누가 당당히 쓰나”

기사승인 2019-10-08 06:11:00

아내 출산 시 남성 직장인이 사용하는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이 지난 1일부터 현행 3일에서 10일로 확대됐다. 그러나 영세·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제도 개선은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과 ‘고용보험법 개정’에 따라 이뤄졌다. 기존에 민간사업장의 경우 산모가 출산을 하면 그 배우자가 법적으로 보장받는 휴가는 총 5일이었다. 그나마 3일은 유급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2일은 각 사업장의 재량으로 유급·무급이 결정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달부터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은 무조건 유급 10일로 확대됐다. 휴가를 청구할 수 있는 기한도 출산일로부터 30일에서 90일로 늘어났다. 휴가 기간 확대에 따른 분할 사용(1회)도 가능해졌다. 취지는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다. 

정부는 사업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보험 우선지원대상 사업장에 5일분의 휴가 급여를 지원한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고용보험법상 우선지원대상은 제조업은 500인 이하, 도소매업, 서비스업은 300인 이하인 기업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39조에 따르면 배우자 출산휴가를 부여하지 않거나 유급으로 하지 않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제도 개선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도 부담 없이 10일간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온도차가 난다. 누리꾼들은 제도 시행은 환영하면서도 “대기업이나 공무원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누가 배우자 출산휴가를 10일씩이나 낼 수 있겠냐는 반응이 대다수다.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20∼40대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맘카페’에서 임신 9개월 차라는 한 산모는 “남편이 배우자 출산휴가가 10일로 늘었다고 회사에 말했더니 상사가 역정을 냈다더라”라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출산을 앞둔 여성은 법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회사에서 3일밖에 쉬지 못한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작은 회사에 다녀서 서럽다”고 토로했다. 눈치가 보여서 남편이 아예 출산 휴가를 낼 생각도 못했다는 경험담도 잇따랐다. 배우자 출산휴가로 3일을 쉬었지만 이마저도 하루는 연차를 써야 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10일이나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직장인이 있기는 한거냐”고 한탄했다.

산모 출산일 30일 이내 언제든지 배우자 출산휴가를 청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산일 기준으로 3일 혹은 5일 내로 기업이 자의적으로 기간을 한정 짓는 경우도 빈번하다. 중간에 낀 주말이나 휴일도 출산휴가일에 포함해 계산하는 기업도 있다. 지난해 12월 출산한 직장인 황모(28·여)씨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다행히 배우자 출산휴가를 낼 때 눈치를 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면서도 “평균적으로 출산일 이후 3일을 쓰는데 주말 이틀치까지 출산휴가로 계산이 됐다. 실질적으로 출산휴가를 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월요일 단 하루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자 출산휴가 활용률(배우자 출산휴가 활용 실적이 있는 사업체 비율)은 기업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고용노동부의 ‘2018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우자 출산휴가제도는 2017년 기준, 인지도는 72.4%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활용률은 7.1%에 불과했다. 사업체 규모별로 활용가능도(필요한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활용 가능한 사업체 비율)에도 격차가 났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배우자 출산휴가제도 활용가능도는 75%에 달했다. 100~299인 67.9%, 30~99인 54.8%, 10~29인 41.2%으로 집계됐다. 5~9인 사업체는 34.7%에 불과했다.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펴낸 ‘중소기업 근로자의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는 현재 일가정양립 지원제도가 실효성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사업주의 현실적 부담도 있지만 의무를 회피하거나 탈법, 불법적 고용관행이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짚고 “근로감독관 인력을 확충해 엄격한 근로감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문정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센터장은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 이후에도 출산휴가 자체를 직장에서 쓰지 못하게 한다는 신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면서 “배우자 출산휴가 제도는 다른 일가정 양립 정책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어디에 다니느냐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가정 양립 정책은 사업장 내의 ‘정서’가 중요하다”며 “인식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지원과 처벌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법이 좋다고 본다. 사업주 부담을 덜어줄 국가의 지원을 확대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준을 최대 500만원 이하 과태료 보다 좀 더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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