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손봤더니...CRPS 환자들 치료길 막힐라

의료전달체계 손봤더니...CRPS 환자들 치료길 막힐라

CRPS 진료, 일부 대학병원뿐인데...낮은 질병코드 적용돼 환자 기피 우려

기사승인 2019-10-12 04:00:00

'대형병원 쏠림' 논란에 대한 대책으로 최근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 대책안을 내놨다. 그러자 이번에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울상을 짓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단기 대책'은 경증환자는 동네 병의원에서, 중증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보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그동안 대형병원에 환자 쏠림 심화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우선 상급종합병원의 평가·보상체계를 바꿨다.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에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고,경증환자 비율은 낮췄다. 또 경증환자를 진료하면 불리하고, 중증환자 진료 시에는 유리하도로록 수가구조도 개선했다.

질병 분류는 전문진료, 일반진료, 단순진료 등 3가지 질병군으로 분류된다. 기존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서 전체 환자 구성비 중 전문진료질병군이 35% 이상일 때 만점을 줬다면, 내년에 실시되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2021~2023년)부터는 44%는 넘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중증질환은 큰 병원에서, 경증질환은 동네병원에서 보도록 하는 의료전달체계 기조를 보다 세밀하게 강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이 CRPS 등 일부 중증질환 환자들의 치료길을 막는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CRPS는 외상 후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만성신경병성통증과 이와 동반된 기능성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 CRPS에 대한 진료 인프라를 갖춘 의료기관은 일부 상급종합병으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 진단과 치료에 있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할 뿐만 아니라 치료제 등의 관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몇몇 상급종합병원 외에는 진료받을 의료기관이 마땅하지 않은데도, 만성 CRPS 환자가 진료를 보러 상급종합병원에 방문하면 질병분류 중 가장 낮은 단순진료군으로 분류된다. 중증도 높은 질환의 진료를 독려하는 대형병원의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전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치료받을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문제는 비단 CRPS뿐만이 아니다. 그나마 CRPS는 희귀난치성질환 산정특례 대상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중증 아토피피부염, 중증 천식 등 동네병원에서 보기 어렵지만 질병코드상 경증질환으로 분류되는 질환들은 본인부담률이 동네병의원에 비해 10~20% 높게 적용돼 환자 부담도 커진다.  

임재영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이라는 큰 틀은 공감하지만, 기계적인 질병코드로 질환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궁여지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CRPS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일부 상급종합병원에 불과한데도, 만성기 환자라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꼭 필요한 환자를 보는 의료진과 병원에게 나쁜 평가가 계속된다면 진료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병원계도 의료전달체계 단기대책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이다. 병원협회는 앞서 지난 9월 성명을 통해 “의료법상 진료거부권이 없고 환자를 유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경증환자를 진료하였다고 해서 의료공급자인 상급종합병원에 종별가산과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주지 않는 패널티를 적용하는 것에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따른 환자와 의료공급자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평가한 후 유관단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의료현장에서는 임의로 중증도를 높여 질병코드를 적용하는 편법도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는 "경증환자 진료를 봤다고 해서 당장 의료진에게 패널티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증도를 높여야 하기때문에 단순진료질병군에 해당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전원이나 타병원으로 연계하는 방향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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