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기기 산업 분야엔 이전에 없는 '혁신'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15일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한국에프디시법제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재활 분야 디지털헬스케어 업체 네오펙트의 반호영 대표는 "미국, 독일 등 선진시장의 혁신 의료기기는 비보험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할 시간이 주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진입조차 안 된다"며 "너무 혁신적인 의료기기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가 일컫은 '혁신'이란 이전에 없고 비슷한 해외 사례도 없는 새로운 것을 말한다. 반 대표는 "혁신형 제품이 처음 사용되는 경우는 아마도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 얼리어답터에 가까운 극히 일부의 의료진, 프리미엄급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환자들일 것"이라며 "미국이나 독일은 혁신형 제품을 이런 비보험 민간시장에서 검증하고 임상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비보험 시장의 진입도 관주도의 신의료평가 프로세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아예 진입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혁신형 제품은 임상결과를 축적하기 힘들다. 누군가 이전에 만든 적이 없기 때문에 비슷한 제품도 없을 것이다. 급여당국에서도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급여로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저희 회사는 덜 혁신적이고, 해외에 이미 레포트가 있는 제품을 취급했기에 허가까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혁신적이어서 기술이 생소한 경우에는 아예 민간의 비보험으로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헬스산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혁신의료기기는 ▲급여/비급여 코드를 적용할 수 있는 제품 ▲외국에 동일한 제품과 유사한 임상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 신의료기술평가에 유리한 제품 ▲혁신적인 외산 제품의 수입 대체 국산 의료기기 ▲비급여 통제를 받지않는 뷰티·피부·비용 제품 등에 불과하다. 이에 반 대표는 "국내 레퍼런스가 없는 회사는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기도 어렵다.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도록 규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헬스 분야 혁신의료기기의 시장진입을 돕는 규제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 산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은 혁신의료기기가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김현준 뷰노 전략총괄부사장은 "인공지능 기반의 의료기기를 만드는 회사를 창업한지 5년이 흘렀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투자를 받으면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의료기기 분야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와 검증에 최소 2~3년이 걸린다. 그마저도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기존 규제나 법도 없던 시절이다. 점차 법과 가이드라인이 나타나면서 시장자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그는 "현재 혁신형 의료기기 분야에서 AI의료진단기기를 만들고있는데 벌써 치료기기가 등장할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다. 새로운 규제가 후발 기업들과 연구자들의 혁신까지 아우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더했다.
앞서 지난해 정부는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을 주도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내년 5월부터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료기기 육성법)과 ‘체외진단기기법’이 시행돼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 심사 특례 등이 지원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존 규제상의 높은 진입장벽, 불확실성 등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등 혁신적 의료기기의 안전관리를 위한 전문인력 및조직 구축 ▲외부전문가 도입 ▲허가심사자 역량강화를 위한 지속적 교육실시 등을 내걸었다. 이정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첨단의료기기과장은 "새로운 기술 진입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의료기기 분야에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며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선제적인 법을 만들어서 규제가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규제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있도록 법안에 지원을 함께 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재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본부장은 "최근 많은 혁신의료기기들이 신의료기술평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안전성있는 제품들이 보험권에 등재될 수 있도록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현재 기업 대상 임상자문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해외시장 공략하는 방법도 안내하고 있으니 충분히 활용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본부장은 "또한 신의료기술평가 외에 유망한 기술을 조기에 알아보기 위한 사전스크리닝을 진행해 에비던스를 보고받고 관련기관과 공유하는 등 작업을 하고있다. 국내 기업의 양질의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창출 등을 지속적으로 돕겠다"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