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존중' 최우선... 정신건강 보듬는 '특별한' 응급실

정신질환 당사자 사회복귀 돕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응급진료실

기사승인 2020-01-1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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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내원한 정신질환 당사자와의 첫 대면은 항상 어렵다. 환자와 의료진과의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가 미처 만들어지기 전의 첫 만남인 만큼 돌발 상황에 대한 긴장의 연속이랄까. 그래서 자부심도 상당하다.” 

지난 8일 서울 광진구의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응급진료실에서 만난 A간호사의 귀띔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치않은 정신응급실은 왜, 무엇 때문에 운영되는 걸까. 이곳은 일반적인 대학병원의 그것과는 방향이 다르다. 센터를 비롯해 일부 국립의료기관에서 시범운영하고 있어 아직 개념도 생소하다. 전명욱 정신응급진료실장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고 설명했다. 

“정신응급진료실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주도하는 응급진료와는 다르다. 정신과 진료 중에서도 응급파트에 해당되는데, 자타해 등 정신과적 긴급 상황을 대응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함께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주간에 내원하지 못한 당사자가 야간 및 주말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정신응급진료실에서 2018년 말부터 운영하고 있는 ‘단기입원 병상’은 여러 의미가 녹아있다. 기본 체계는 사흘간 경과를 보고 퇴원을 시키거나 정규 병동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단치 않아 보이지만, 민간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이 시스템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때문에 자타해 등 긴급 상황에 일차적으로 투입되는 구급대원이나 경찰관들은 정신질환 당사자를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갔다가 번번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정신질환 당사자 중 가족 등 보호자가 없는 경우 ‘응급입원’이나 ‘행정입원’을 통한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행정입원은 절차적 어려움이 있어 문턱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행정입원이 가능한 병상 규모는 1000여 병상 가량 되지만, 정신의료기관이 아닌 곳은 서울의료원 외에는 없다. 

'환자존중' 최우선... 정신건강 보듬는 '특별한' 응급실

정신응급진료실에는 매일 다양한 환자들이 찾아온다. B간호사는 한 미성년자 사례를 기억하고 있었다. “십대 청소년이었는데 가출 후 성매매를 하다 경찰의 손에 이끌려 왔는데, 우울감 때문에 자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응급진료실에 오는 십대, 이십대 당사자 중에는 자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응급 상황이 완화되고 만나보면 하나같이 순하고 착한 아이들인데,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할 때면 뿌듯하지만, 다시 내원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정신질환 당사자의 보호자, 특히 부모는 자녀의 상황을 본인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큰돈을 들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C간호사는 “한 어머니는 집 한 채 밖에 남지 않아 그나마 진료비가 저렴한 국립의료기관에 왔다며 눈물을 쏟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말했다. 

고(故)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이후, 정부와 국회는 정신질환 당사자에 대한 조기 치료 및 사회복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신응급진료실과 같은 시스템이 일선 의료현장에 도입되려면 난관이 적지 않다. 우선 ‘돈’이 걸림돌이다. 전명욱 실장은 “민간기관 입장에서는 진료비 지불 능력이나 의사가 없어 진료비 미수로 남게 되는 경우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민간의 재원 확보를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그간의 경험을 살려 구체적 안을 제시코자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응급진료실을 필두로 센터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바로 ‘환자 존중’이다.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상투적 메시지로도 보이지만, 센터가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윤영 의료부장은 “센터 현대화 사업을 위해 당사자, 가족, 동료 의사들은 입을 모아 전국 정신보건의료시스템과 사회복지를 관장, 지원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기관을 만들라고 했다”며 “관행적 진료가 아닌 정도에 맞고 윤리적 진료, 지역사회 연계, 조기복귀, 인권 존중 병원 서비스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센터로의 현대화 과정 및 이후에도 주요한 목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남 진료부장은 ‘환자 존중’이 무조건 환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의료진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환자 존중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단기입원병상에서 사흘간 환자를 보호하고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것은 환자 존중을 위한 시스템”이라며 “사흘간 안정화 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최선이지만, 일선 병원에서는 수가를 이유로 이것을 안 하고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아울러 “적어도 국립병원이라면 정신질환 당사자의 사회복귀가 중요하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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