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제주 남쪽 중산간 마을 풍경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스물여섯 번째

기사승인 2020-01-11 0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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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리는 제주 신공항 시설의 70 퍼센트가 들어서는 곳이다. 살아온 터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로 어수선하지만 마을과 바다는 평온했다.

12월 21일에 집에 갔다가 새해 1월 3일에 제주에 왔다. 본의 아니게 2주간 TV 없이 살았다. 제주에 오면서 인터넷과 TV 회선을 끊지 않고 유지하다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통해 일시적으로 사용을 중지했다. 두 달쯤 지났는데 통신사에서 연락이 왔다. 중지 기간이 며칠 후면 끝나고 그 후엔 다시 정상 요금을 내야 한단다.

온평리 마을 앞 바닷가에 삼성혈에서 솟은 삼신인 (三神人)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그리고 부을나(夫乙那)가 벽랑국 (碧浪國)에서 온평리의 해안에 도착한 세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는 장면을 주제로 한 해안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제주 집세는 인터넷과 TV 요금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전도 필요 없어 해지를 요청했다. 상담원은 어떻게든 해지를 막아보려 이런 저런 조건을 제시했다. 조건 모두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꽤 오랫동안 고객이었던 나를 배려한 조건은 없었다.

올레 3코스가 두 갈래로 나뉘는 길목의 집 담장에 쓰여 있는 ‘뒷집 할망’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어머니를 생각한다.

아내와 둘이 지내면서 TV마저 없으니 고요하다. 둘 다 어두워지면 좀처럼 외출도 하지 않는 터라 저녁엔 적막했다. 아내는 필기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끔 이것저것 묻고 답하며 조금씩 적막이 깨진다. 거실 벽을 절반이나 차지한 듯 보이는 큰 벽걸이 TV는 그냥 까만색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TV 없이도 살만 하다.

중산간 지역에 접어들어 흔하게 보이면서도 볼 때마다 아름다운 장면이 멀리 밭담을 두른 초록의 무밭과 배추밭이다. 인근에 신공항이 들어선 이후에는 사라질 지도 모를 풍경이다.

저녁 면회시간에 대야에 따뜻한 물을 조금 받아 수건을 몇 장 담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멸균 거즈로 입 안을 닦아드리는데 거즈가 무언가에 걸린다. 살펴보니 위 어금니 보철이었다. 치과 치료를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다 망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얼굴, 손, 발을 닦아드렸다. 손등 피부는 꺼칠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뭉툭했다. 매끄러운 손톱하나 없이 투박한 손이었다. 발뒤꿈치의 굳은살은 곳곳이 갈라졌다.

중산간 지역의 또 다른 대표적 풍경은 귤 밭이다. 여름이 지나도록 온통 초록이다가 가을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비로소 황금빛이 알알이 보인다.

늦은 시간에 집에 가서 아이들 살피고 옷 갈아입은 뒤 다시 병원에 와 사무실 소파에 누웠다. 겨울이었지만 병원의 맨 위층에 있던 사무실은 춥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그렇게 닷새 째 아침에 소파에서 일어났는데 코피가 주르르 흘렀다. 코피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더 씩씩해야 했다.

곳곳에서 귤이 버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 손과 발이 몰라보게 고와지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에 물로 닦고 보습 크림 발라드렸을 뿐인데 얼굴, 손, 발 피부가 아기처럼 보들보들했다. 간호사들이 가끔 다가와 어머니 얼굴이 예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의식 없이 누워 있어도 가족들 소식 전해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 드리라고 한다. 20일이 지나도록 어머니는 여전히 표정 없는 맑은 얼굴로 누워계셨다. 기약 없이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리고 해가 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래된 밭담에는 송악이 돌을 움켜쥐며 자라고 그 안쪽에선 나무가 자라며 밭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밭담 사이로 난 길은 언제 보아도 마음이 편안하다.

딸 셋에 부자 되고 아들 셋에 집안 거덜나댄
그 시절
열한 살 차가운 물에 들어 동상 키우다가,
열아홉 시댁 들어 시동생 키웠다가
바다나간 신랑걱정 내 새끼 때 끼 걱정
큰 바람에 지붕걱정, 한겨울에 무밭걱정,
걱정에, 걱정에, 그 걱정이
생활 되어 버린 인생.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시절이 바뀌어
내 아들 장성하여 나를 보러오지만
썩는 무가 아까워
오늘도 해풍에 하영 말려 네게 보낸다.
-뒷집 할망-

온평리를 지나 난산리 마을 어귀에 애기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애기동백은 나뭇잎은 작으면서도 짙은 분홍색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이곳 난산리를 중심으로 2.8 km의 난미밭담길이 조성되어 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만물을 낳아 세상을 창조하던 태고 적에 삼성혈에서 솟은 삼신인 (三神人),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그리고 부을나(夫乙那)가 벽랑국 (碧浪國)에서 온평리의 해안에 도착한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혼인한 곳이 온평리의 혼인지다.

난산리를 지나면 길은 통오름으로 이어진다. 통오름은 마치 집 뒤의 언덕을 걷는 느낌으로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오름이다. 가을이면 패랭이, 쑥부쟁이, 꽃향유 등 온갖 보라색 꽃이 피어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온평리가 어수선하다. 성산읍 신산리, 온평리 일원에 건설되는 제주 신공항의 활주로와 여객청사 등 핵심 시설이 온평리에 위치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공항 예정지의 약 70%가 온평리에 건설되는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대다수의 온평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될 것이다. 토지 수용과 보상의 적정성 등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린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통오름을 오르다 보면 잠깐 동쪽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제주 오름의 매력은 힘들이지 않게 걸어 사방으로 펼쳐진 멋진 제주의 자연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온평리 해안 마을은 고요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연륜을 자랑하는 폭낭이 성성했고 바닷가엔 벽랑국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는 석조물과 함께 망망대해가 잔잔했다. 올레 표식을 살피며 해안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길이 갈라진다. 해안을 따라 걸을 수도 있고 중산간 마을을 향해 갈 수도 있다. 해안 길은 나중에 다시 걷기로 하고 중산간 마을을 향했다. 이 올레길은 온평리포구에서 출발해 난산리와 신산리를 거쳐 신풍포구에서 다시 바다를 만난다.

통오름 정상의 산책로를 걷자면 발에 밟히는 야자매트와 그 사이로 자란 잔디의 폭신폭신한 느낌이 온 몸으로 전달되고 길 양쪽엔 아직 지지 않은 억새꽃이 배웅하듯 손을 흔든다. 제주의 잘 알려진 어느 오름보다 못하지 않은 멋지고 편안한 오름이다.

갈림길의 어느 집 담장에 ‘뒷집 할망’ 이야기가 쓰여 있다. 시처럼 읽힌다. 해녀였던 뒷집 할머니의 푸념 같기도 한 이 글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먹이고 입힐 걱정에 걱정이 이어지던 세월이었지만 그저 아들들은 세상에 나가 이 고생 없이 살기를 바라며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몰랐던 어머니. 그 아들이 어느새 몸이 부서지던 어머니의 그 나이가 되었다.

통오름에서 내려와 독자봉으로 향해 가는데 길가에 장딸기 꽃이 피어 있다. 장딸기는 5~6월 꽃이 피고 7~8월 열매가 익는다는데 한 겨울에 산딸기꽃이라니.

짙푸른 무밭과 배추밭의 싱그러움과 그 주변의 구불구불한 밭담이 아름답게 이어졌다. 귤나무를 바람이 흔들지 못하도록 돌담 너머로 삼나무, 까마귀쪽나무, 동백나무를 심어 가꾼 울타리 옆길을 지나며 내다보면 저만치 초록의 무와 배추밭이 보인다. 편안한 길이다. 마을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아도 무와 배추와 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잘 자라고 있었다.

통오름을 내려오면 길 건너에 또 다른 오름, 독자봉이 기다린다. 독자봉은 통오름과는 달리 소나무 숲속으로 난 길이 예쁜 오름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걷다가 ‘돌담위로 늘어진 황금빛 감귤을 만나고 서민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제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품고 있는 난미밭담길’ 안내문이 보였다. 난산리 마을 안이 아니라 남쪽의 마을 어귀를 통과하며 사람 사는 흔적을 보았다.

길가 어둑한 창고 안에서 노인 내외가 귤을 선별하고 있었다. 내다 팔 귤을 골라내고 있는데 상처 없고 모양 좋은 일정한 크기의 귤 10 kg 한 상자에 만오천 원을 받는다고 한다. 육지로 택배를 보내려면 택배비 오천 원을 추가하니 이만 원이다.

밭담과 나란히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던 삼나무를 동백나무와 같은 사철 푸른 활엽수로 바꾸고 있는 곳이 꽤 많다. 죽은 삼나무를 송악이 타고 올라가고 있지만 함께 넘어갈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한쪽엔 어른의 어깨 높이로 쌓아 올린 귤 상자들이 보인다. 내다 버릴 귤이란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혹은 껍질에 상처가 있거나. 오다가 귤 밭 언저리에 버려진 귤 무더기를 보았는데 이렇게 멀쩡한 귤이었다. 농사짓는 이는 콩 한 톨, 쌀 한 톨 귀하게 여기는 법인데 저렇게 내다 버리는 마음이 오죽할까. 많이 먹고 가라며 자꾸 귤을 건네는데 주는 대로 다 받을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내다버릴 귤이라고는 하지만 염치없이 넙죽넙죽 받기엔 귀한 귤 아닌가.

난산리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만난 다른 노인은 귤을 차에 싣던 중이었다. 인사를 건네자 귤을 먹고 가라 한다. 인근 귤 밭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귤을 따고 있었다. 귤 값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어도 인건비가 아까워 나무에 그대로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제주에선 흔하게 버려지는 뿔소라 껍데기에 강렬한 색을 칠해 검은 돌담을 장식해 두면 돌담은 보이지 않고 오직 뿔소라만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신풍포구가 멀지 않다.

마을을 나와 통오름과 독자봉을 차례로 올랐다. 야트막한 오름이어서 집 뒤의 언덕길 걷는 느낌으로 올라보니 근처에 이보다 높은 지형이 없어 사방으로 시야가 넓게 펼쳐진다. 공항이 들어서면 이 편안한 초록이 사라지고 높고 낮은 건물이 들어서 저 아래 남쪽 바다를 가릴지도 모르겠다. 온평리와 난산리 그리고 신산리를 걸으면서 본 이 예쁜 길이 몇 년 후에도 남아 있을지.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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