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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정재일 “계속 돌파구를 찾고 있어요”

정재일 “계속 돌파구를 찾고 있어요”

이은호 기자입력 : 2020.02.10 07:01:00 | 수정 : 2020.02.10 14:03:4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인생은 다만 걸어가는 그림자. 제시간이 오면 흥이 나서 덩실거리지만 얼마 안 가서 잊히는 가련한 배우일 뿐.’ 뮤지션 정재일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맥베스’에 나오는 이 문장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서울 이태원로의 카페에서 만난 정재일이 느리지만 확고한 말투로 꺼내놓은 생각이다. 삶을 비관하는 허무주의인가, 찰나의 쾌락으로 도피하려는 향락주의인가. 정재일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저는 쫄보에 소시민이라,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한 폐를 안 끼치도록 노력하며 살 뿐이에요.” 

정재일. 속칭 ‘천재 뮤지션’. 만 3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0세 땐 기타를 잡았다. 중학생 땐 한상원, 정원영, 이적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밴드 긱스를 꾸려 활동했고, 비슷한 시기 타악그룹 푸리의 리더 원일을 만나 전통음악을 탐닉했다. ‘기생충’과 ‘옥자’를 비롯한 영화와 연극·뮤지컬 등 각종 공연 예술의 음악감독, 가수 윤상·김동률·이적·박효신 음반의 프로듀서, 소리꾼 한승석과 듀오를 이룬 한&정 활동…. 싱어송라이터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은 정재일을 “내가 추종하는 뮤지션”이라고 했다. 그렇다. 정재일의 행적을 따르다 보면 반드시 ‘아름다움의 다른 차원’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정작 그는 “예술은 별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예술이 가진 힘을 얕잡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떤 예술에는 그것을 경험하기 이전과 이후가 결코 같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공연이 그랬고, 한국의 전통음악이 그랬으며,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작품이 그랬다. 다만 정재일은 과잉된 도취를 경계하는 듯했다. “자신에게 침잠해 주위를 돌보지 못하는 예술가들도 많죠. ‘예술은 이래야 해’라거나 예술을 신성시하는 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옳지 않은데 ‘예술’로 포장되는 일들…. 그런 건 딱! 질색이에요.” 

찰나에 반짝이는 재능에 매혹되기보단 “자연을 거슬러 긴 시간 자신을 갈고닦는” 예술가에 경탄하는 사람. 자신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GV에서 정재일은 “많은 시간을 이겨내고 많은 고통을 겪고 나서 이뤄지는 예술에 크게 감동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번뜩이는 영감에 기대지도 않는다. 자신에겐 “눈떠서 감을 때까지가 다 영감을 주워 모으는 행위”(JTBC ‘너의 노래는’)라서다. 창작의 시작은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의 의중이란다. ‘선택’이나 ‘결심’ 같은 비장한 단어들로 질문을 던지면 “제 인생은 ‘돌려막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독히 현실적인 말들 아래로 어떤 나이테가 느껴졌다. 

“저는 벽을 일찍 만난 것 같아요. 가령 ‘내 재주로는 말러의 심포니 같은 걸 쓸 순 없겠구나’ 하는 벽에 많이 부딪혔고 현실을 자각하면서 이런 태도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밴드 긱스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린 순간부터 줄곧 ‘천재’로 불려온 정재일은,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 “계속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게, 결국 위기감 때문에 하는 행동들 같아요. ‘내가 만든 게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 하는….” 그의 재능을 ‘하늘이 내린 것’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굴뚝같지만, 그가 어린 시절 ‘천재’라는 찬사에 매혹됐다면 어땠을까 문득 상상하니 아찔해졌다. 

정재일은 요즘 특히 “돌파구”가 간절하다. “원래도 가진 게 없었는데(웃음), 그걸 너무 많이 쓴 거 같아요.” 오는 15일 서울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아이마켓에서 여는 단독 콘서트는 그가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거점이다. 정재일은 “‘살풀이’를 한 번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결심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열혈 팬들이 우후죽순 늘어, 공연 티켓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죄다 팔려 나갔다. 

마지막 독집 음반이 나온 게 벌써 10년 전. 혹시 이번 공연이 솔로 음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웬걸. 정재일은 “싱어송라이터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워낙 다양한 장르에서 작업하다 보니까,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저를 잘 모르겠어요. 욕심도 생기질 않고. 어딘가에서 영감을 받아서 내 것이라고 작품이라고 써보면 너무 비대중적이라서 내도 될까 싶고요,” 대신 “아득바득” 기록은 한다. 전역 후 내놓은 ‘그을린 사랑’ OST를 비롯해 가장 최근 작업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까지, 그는 대부분 실물 음반 형태로 자신의 음악을 내놨다. “그 또한 내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발매한 음반들이다. 

정재일은 음악이 “직업이자 살아갈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음악에 헌신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그에게 노동으로서의 음악은 중요하다. “저는 저를 압도해서, 그 예술을 알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예술에서 감동받고, 그런 예술을 원하며 찾아다니죠.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고 열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듯, 저도 아름다운 예술을 많이 소비하겠다는 바람에 합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거죠.”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목발에 의지하던 지난해 9월, 정재일은 “왼발로 꾸역꾸역” 이탈리아 카탄차로에 다녀왔다. 피나 바우쉬 무용단의 신작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피나 바우쉬는 2009년 별세했지만 쇼는 계속되고 있었다. 무용단이 다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재일은 육로와 해로를 오가는 고된 여정 속에서도 가슴이 부풀었다. “20대 땐 싱어송라이터로의 야망도 있었다”는 그는 불혹을 앞둔 지금 ‘아름다움에 마비되지 않는 것’을 꿈꾼다. 그가 말한 “생존”의 의미가 어쩐지 다르게 들렸다.

wild37@kukinews.com / 사진=블루보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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