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28일 오후 11시 처음 방송하는 Mnet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2020년 버전 힙합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기 위한 ‘아재 래퍼’들의 경연을 소재로 한다. 평균 나이 41.3세의 남성 래퍼들이 서로를 보며 ‘쏴라 있네’를 외치는 동안, 힙합 키즈를 자처하는 진행자 유병재와 이용진은 ‘형님’들의 재림에 기뻐하고 감동한다.
12명의 래퍼들과 2명의 MC, 총 14명이 출연하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하지만 여성에겐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혹시 여성 래퍼들이 출연을 거절한 걸까.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황성호PD는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여성 래퍼들의 섭외도 고려해봤다”면서 “하지만 내 생각에 (여성 래퍼들은) 우리 프로그램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에겐 처음부터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JTBC는 지난해 4월 ‘슈퍼밴드’ 출연자를 남성으로만 제한하면서 “기획 의도는 마룬파이브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반 시즌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성 위주로 갔다”고 설명했다. Mnet ‘쇼미더머니’는 또 어떤가. 무려 8번의 시즌을 이어오는 동안 이 프로그램에 프로듀서로 기용된 여성 뮤지션은 0명이었다. ‘쇼미더머니8’의 최효진 책임프로듀서는 “(프로듀서로) 여성 래퍼들도 염두에 뒀으나, 각 크루 프로듀서들의 균형을 맞추려다 보니 올해는 (여성 래퍼들의) 참여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들이 생각하는 여성 뮤지션은 프로그램에 이질적인 느낌을 주거나(‘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글로벌 팝 밴드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슈퍼밴드’), 출연자들 간 균형을 해치는(‘쇼미더머니8’) 존재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세 PD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판단했을까.
혹자는 여성 뮤지션의 풀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와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다루는 힙합이나, ‘슈퍼밴드’가 소재로 한 밴드 시장은 특히나 여성 뮤지션의 수가 적은 곳이니까. 하지만 여성 뮤지션이 적은 이유는 능력 있는 여성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가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래퍼 블랙넛은 여성 래퍼를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도 활동을 계속한다. 반면 Mnet ‘고등래퍼’ 시리즈의 첫 여성 우승자였던 이영지는 악플과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밴드 시장은 어떤가. 2년 전 ‘미투’(Me too) 운동 열풍을 타고 인디음악계 안의 성폭력이 고발됐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여성 인디 뮤지션이나 밴드의 여성 멤버는 ‘홍대 여신’으로 대상화되기 일쑤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역할은 ‘아재 래퍼’를 ‘우쭈쭈’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구조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뮤지션을 제대로 발굴하고 조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8일 공개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맛보기 영상에서조차 여성 뮤지션의 존재는 소외된다. 영상은 국내 첫 힙합 컴필레이션 음반 ‘1999 대한민국’을 불러오면서, 유병재의 목소리를 빌려 당시의 힙합 뮤지션들을 ‘형들’로 축소한다.
하지만 ‘1999 대한민국’에는 여성 그룹 디바도 있고, 여성 래퍼 타샤(윤미래)도 있으며, 미애·황수정·에스더·J도 있다. 또한 이후에도 여성 힙합의 계보는 끊어지지 않고 미료, 렉시, 길건 같은 걸출한 뮤지션을 배출해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고 물으시니 답하겠다. 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커리어를 이어온 여성 뮤지션의 존재를 끝끝내 지워버리는 힙합이라면, 과연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wild37@kukinews.com / 사진=Mne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