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햇수로 21년, 횟수로 1046회. KBS2를 대표하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린다. 그간 ‘개콘’을 거쳐 간 개그맨만 줄잡아 수백 명. 2000년대 초반 ‘개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때 그 개그맨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현대생활백수’(2005~2006) 고혜성
“일구야, 형이야!” 파란색 트레이닝복에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카락.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화기 너머 일구를 괴롭히는 만년 백수. 개그맨 고혜성이 2005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선보인 ‘현대생활백수’ 속 캐릭터다. 3000원짜리 자장면을 2000원에 팔라면서 “대신 단무지는 네가 먹으면 되잖니”라고 회유하거나, 조조할인이 오전 8시까지 적용된다는 말에 “그럼 새벽 4시에 가면 공짜로 보겠네”라고 우기는 협상가 혹은 진상. 고혜성은 이 코너로 유행시킨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 다 되지”라는 대사를 활용해 10여년 전부터 ‘동기부여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감대통령’ ‘칭찬사전 1000선’ ‘유머시집’ 등의 책을 썼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강연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다.
‘우비 삼남매’(2003) 김다래
오른쪽에 선 권진영이 에너지 음료를 든다. 왼쪽에 있는 김다래는 불상 포즈를 취한다. 그들 사이에서 박준형이 말한다. “병들고 불상(불쌍)한 개그.” 양쪽에서 “우와~”하는 건조한 탄성이 터진다. 김다래는 2003년 박준형, 권진영과 함께한 ‘우비삼남매’ 코너로 명성을 얻었다. 2002년 KBS 공채 17기 개그맨에 합격한지 1년도 안 돼 누린 전성기였다. 처음엔 박준형을 보조하는 역할로 등장했다가 작은 체구에 귀여운 외모, 애교 있는 말투가 관심을 받으며 “나 예뽀?” “내끄야” “기다료바” 같은 유행어도 남겼다. 하지만 이른 성공은 큰 상처를 남겼다. 김다래는 유명세로 인한 고충, 권진영과의 불화 등으로 연예 활동을 관두고 2005년 일본으로 떠났다. 귀국 후인 2007년 tvN ‘티비엔젤스3’를 진행하고 2010년 트로트 음반도 냈지만 활동을 오래 하진 않았다. 2018년 박준형이 주도한 ‘갈갈이 패밀리 2018 개그콘서트’ 무대에 올라 오랜만에 관객을 만났다.
‘우격다짐’(2002~2003) 이정수
무엇 때문인지 모를 심각한 표정, 무협지에나 나온 듯한 화법, 상대방의 눈높이까지 턱을 쳐든 자세와 앞니로만 말을 하는 듯한 독특한 발음, 그리고 건네는 인사 “내가 누구게”. 이정수의 첫인상은 신선하다 못해 괴상했다.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 그래서 처음엔 ‘바람잡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우격다짐’은 싱거운 듯 신선한 개그와 “웃기지? 웃기잖아”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등의 유행어로 빠르게 마니아를 늘려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SBS 아침드라마 ‘맨발의 사랑’을 시작으로 연극 등 연기에도 도전했고, 2013년 결혼 후엔 요즘 말로 ‘살림남’ ‘육아대디’로도 이름을 떨쳤다. 덕분에 지금은 블로그와 언론사에 사랑·결혼·육아 관련 칼럼을 연재하는 작가로 활동 중이고 각종 행사와 강의에도 나간다. 기쁜 소식 하나. 최근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 내년이면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갈갈이 삼형제’(2001~2003) 이승환
개그맨 박준형이 앞니로 무를 비롯한 온갖 채소와 과일들을 갈아대고, 정종철이 온갖 동물과 사물들의 소리를 흉내 낼 때, 그저 준수한 외모만으로도 존재감을 뽐내던 이가 있다. 주인공은 이승환. 1997년 KBS 13채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갈갈이 삼형제’ 코너로 방송, 행사, CF, 심지어 영화까지 섭렵했다. 2002년 돌연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봤지만, 2007년 차린 ‘벌집삼겹살’이란 고깃집이 수백 개의 체인점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하며 돈방석에 앉았다. 자신감을 얻은 2012년 건설시행사를 열었으나 사기와 직원의 횡령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콜레라 사태까지 겹쳐 벌집삼겹살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이후부터는 다양한 기부 활동과 캠페인을 진행 중이며,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 컨설팅과 마케팅 컨설팅, 강연 등도 겸하고 있다.
‘봉숭아학당’ 황마담(2000~2002) 황승환
황승환, 아니 오승훈만큼 파란만장을 산 이가 또 있을까. 1995년 KBS 공채 12개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복잡한 가정사로 한동안 공백기를 갖다가 2000년대 초반 ‘봉숭아학당’에서 여장남자 캐릭터인 ‘황마담’으로 분해 전성기를 누렸다.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내! 사랑” “알면서~”라며 애교를 부리다가도, 화가 치솟으면 가발을 내던지며 “뭐야 이 자식아!”라고 외치는 캐릭터였다. 2006년 연예계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웨딩컨설팅 ‘황마담 웨딩’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고, 2011년엔 노래방기기 제조업에도 손을 뻗었다. 그러나 연대보증으로 거액의 부채를 떠안았고, 주가 조작·횡령·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사업을 정리한 뒤인 2016년엔 불교에 심취해 선사가 됐으나 이후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wild37@kukinews.com / 사진='개그콘서트' 방송화면, 유튜브 채널 KBS COMEDY: 크큭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