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남제분 류원기 前 회장 “나도 죽어야 하나”

기사승인 2016-03-09 11: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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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남제분 류원기 前 회장 “나도 죽어야 하나”

본보는 지난 2일과 3일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의 유가족 고(故) 하지혜(사망 당시 22세)씨의 오빠 하진영씨의 인터뷰와 1인 시위 현장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故 하지혜씨 오빠 “대한민국은 결국 ‘돈’과 ‘권력’”· 윤길자 ‘허위진단’ 세브란스의 뻔뻔한 사유지 타령)

이후 청부살인의 범인 윤길자(71)씨의 남편 영남제분 류원기(70) 전 회장이 반론의 기회를 요청, 본보는 취재원과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수용해야 하는 언론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 기사를 싣습니다.




[쿠키뉴스=민수미 기자] 2002년 윤씨는 당시 현직 판사였던 사위와 사위의 이종사촌 동생인 하씨의 불륜관계를 의심해 하씨를 청부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13년까지 각종 병명으로 형 집행정지를 처분 받아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활해왔다.

이 같은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고 대중의 공분을 사자 윤씨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검찰은 특혜성 형 집행정지에 대한 수사를 착수, 류씨와 윤씨의 주치의 박병우(58) 세브란스 병원 교수를 구속기소했다.

1심은 류 회장에게 징역 2년을, 박 교수에게는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2014년 10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류 회장에게 허위진단서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 횡령에 대해서만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박 교수 역시 ‘이 사건의 책임을 진단서를 작성한 의사 개인에게 전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됐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쿠키뉴스 사옥에서 만난 류씨는 “나도 자식을 둔 부모인데 피해자 가족이 어떻게 안타깝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가해자 가족이 받는 피해도 한 번쯤은 생각해 달라는 취지에서 이 자리에 나왔다. 언론이 중립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다음은 류씨와의 일문일답.



-기사로 인해 가해자 가족이 받고 있다는 피해란 어떤 것인가

“일단 피해자 가족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찢어진다. 그렇다고 가해자 가족들은 편하기만 하겠나.

특히 (나와 부인 윤길자의) 자식들은 무슨 죄가 있나. 아들은 교수 되겠다고 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는 과정에 이 사건이 터져 들어왔다. 당시 부인은 성동구치소에 있었는데 그 세상물정 모르던 아이가 면회를 어떻게 가는지 알겠나. 자기 인생 버리면서 엄마 찾아다녔다. 아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딸도 자기로 인해서 어머니가 남편을 의심해 그런 일을 했는데 시집에서 살아가기 힘들지 않겠나. 사위도 마찬가지고.

내 주위 친인척이 모두 죄인이 돼서 모든 활동을 접었다. 하씨가 동생을 잃은 건 아픔이고 가해자 가족의 형제라는 이유로 사회생활과 하던 일을 모두 접는 건 아픔이 아닌가. 내가 그 가족들을 이해하듯 사람들도 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지 한번은 헤아려 줬으면 한다. 이걸 바라는 것조차 큰 욕심이란 걸 안다.”

-피해자 가족에게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2002년 사건이 일어난 후에 내가 4차례 찾아갔다. 우리 애들 엄마는 죄인이다. 형사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건 사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민사적인 문제는 나하고 합의하자는 마음에 찾아갔다. 당시 경기 하남시 근처에서 하씨 아버지와 만나 여러 제안을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내 재산을 압류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했다. 이후 하씨의 아버지가 현재 사는 강원 평창까지 지인을 몇 번을 보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이렇게 내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

아까 말했듯이 가해자 가족들도 피해를 보았는데 우리가 어디까지 무슨 책임을 져야 하나. 나는 법률이 허락하는 데까지 (피해자 가족에게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나도 자살하고 죽어야 하나. 내 자식이 죽어야 하나. 피해자 오빠가 지금 1인 시위하고 다니는 게 맞는 일인가. 내가 볼 땐 아니다.

그 미친 여자(윤길자) 하나 때문에 피해자 가족이 딸을 잃었다. 안타깝지만 이제는 자기들이 안고 가야한다. 이를 사회에 전가하면 안 된다. 언론을 이용해 사람을 몰아넣으면 안 된다. 연좌제 없는 우리나라에서 책임을 어디까지 지어야 하나. 하고 있던 사업을 접어야 하나. 실제로 우리는 이 상황에 기업 운영하고 싶겠나.”

-영남제분의 이름을 바꾸고 전문 경영인을 고용했다. 이미지 쇄신용이란 지적과 함께 최대주주로서 지금도 경영 일선에 있다는 의혹이 있다

“내가 회사에 있다가 이런 사고를 냈으니 무슨 얼굴로 회사에 가나. 그래서 전문 경영인을 쓴 것이고 상호를 바꾸는 것은 내가 원한 적이 없다. 상호 변경은 당연히 이미지 쇄신을 위해 한 것 아니겠나. 직원들도 먹고살아야 한다.

이 사건으로 대기업들도 우리랑 거래를 끊고…. 지금 회사가 매우 힘들다. 이런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우리 직원들이 2013년부터 용달차에 밀가루 포대를 싣고 부산 중국집을 한 집 한 집 돌며 장사를 하고 있다.

경영권도 그렇다. 나와 아들이 영남제분 주식 43%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최대주준데 영향력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대표와 사외이사들을 외부에서 데리고 왔는데 이들에게 자율권을 안 주고 내가 경영을 통제하면 그들이 좋다고 하겠나. 경영에 손을 뗐다 안 뗐다는 무엇으로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율권을 보장한 것은 맞다. 과거 나와 같이 운영했던 공동대표를 내보낸 것이 그 예다.”

-현재 윤씨가 최신 시설로 모범수들만 이송된다고 알려진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됐다

“일단 개인적으로 호화 교도소 생활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교도소 생활만 두 번을 했다. 똑같다. 환경이 좋다 나쁘다 따질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화성 직업훈련교도소가 난방 시설이 있다고 안락한 곳에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던데 교도소는 다른 곳도 난방 다 해준다. 전기장판이라도 깔아 얼어 죽지 않게 해주는 곳이 교도소다. 윤길자가 ‘빽’을 써서 좋은 곳에서 수감생활을 한다고 전하는 언론들은 정말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2013년 일었던 호화병실 논란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가면 보통 처음에는 1~2인실을 준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에 1인실에 있었던 것이고. 이후 4~5인실로 옮겼으나 주변 환자들에게 무기수라는 말이 퍼져서 같이 못 있겠다는 항의에 어쩔 수 없이 1인실에 있던 것이다.

애들 엄마는 진짜 나쁜 사람이다. 솔직히 꼴도 보기 싫다. 그래서 나는 2013년 이후로 면회 한번을 간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다. 호의호식을 하다 암에 걸려도 치료는 받아야 하는데 교도소에서 암에 걸렸다고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을 때는 내 마누라고 불리하면 이혼해’ 할 수는 없다.

형 집행을 받아 수술하고 몸을 추스르는 동안 최대한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남편의 도리 아니겠나. 살인 행위는 밉지만 나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그래서 나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러고 있다. 정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 가족이니까.”
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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