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간단한 시술을 받은 뒤 희귀병 진단을 받은 환자가 보상은 물론 병원 측으로부터 사과조차 받지 못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왼쪽 다리에 혈전 용해술, 하지정맥 혈관 조영술, 스텐트 삽입술을 받은 김지영(37·가명)씨. 시술 후 김씨는 왼쪽 발가락, 발 외측부, 뒷꿈치 등 시술 부위의 감각이상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경험했다.
당시 시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김씨가 통증을 호소하자 의료진은 부종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답했다. 뒤늦게 담당 레지던트가 시술 당일에 제거했어야 하는 주사 바늘(Sheeth)을 하루 뒤에 제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병원 측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김씨에게 퇴원 절차를 밟았다. 이어 당시 김씨 시술을 담당한 의사는 현재 길병원을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퇴원 후에도 김씨는 왼쪽 다리에 심각한 통증과 감각 이상이 지속됐다. 다른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은 결과 김씨는 왼쪽 무릎 부위에 경골신경병증과 복합통증증후군(CRPS) 2형 진단을 받았다. CRPS는 약한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는 희귀질환이다. CRPS의 원인이 불분명할 때 1형으로, 신경손상으로 인한 것이 확인됐을 때 2형으로 진단된다.
김씨는 현재 병원의 의료과실을 주장하고 있다. 김씨는 “발바닥에 큰 대못을 박는 것 같고 그 주변부에는 타는 듯한 통증이 지속된다, 잠을 제대로 자는 것도 힘들고, 통증 때문에 멀리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감각신경, 운동신경 손상돼 한 발로는 잠시 서있기도 힘들다. 시술 전에 비해 감각을 반절 정도 밖에 못 느낀다”며 “그 동안 정상인의 발을 갖고 살아 왔는데, 병원 시술 이후의 저는 비정상의 발로 살아 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서로의 서상수 변호사는 “시술부위와 신경손상 부위가 일치하고, 수술 전에 신경손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시술과 복합통증증후군의 개연성은 높다”며 “다만 시술 중 어떤 경과에서 손상이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다. 병원이 기왕증이나 불가피한 합병증 등 시술과 개연성이 없다는 점을 항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용우 복합통증증후군환우회장은 “주사를 맞거나 시술이 이뤄진 부위에서 신경손상이 일어났다면 의료사고로 인정될 수 있다”며 “다만 인과관계가 직접 확인되지 않았는데 환우들이 무턱대고 소송에 나섰다가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전후사정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병철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혈관보다 신경이 깊기 때문에 혈관 내 시술을 하다가 경골신경을 건드릴 가능성은 낮다. 시술 후에 예기치 않은 합병증이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복합통증증후군은 아주 사소한 외상으로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의료사고 여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냈다.
한편, 병원 측은 주사바늘을 하루 늦게 제거한 실수 외에 의료과실은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통증 원인이 시술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시술과정에서 주사바늘을 하루 지나서 뽑은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감염이나 신경손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김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