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물영아리오름

이미애 / 기사승인 : 2020-02-08 00:00:00
- + 인쇄

집에서 설 쇠고 다시 제주에 내려올 준비를 하는데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에 관한 뉴스가 잦아졌다. 예약되어 있던 정기 검사와 진료를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에서 마스크를 몇 장 구입했다.

제주행 비행기는 아직 거의 만석이었는데 승객 중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염려하지는 않고 있었다. 제주에 온지 일주일도 지나니 않아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마스크는 구하기 어렵고 지하철엔 노인 승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제주에 놀러오겠다고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던 지인들이 여행 계획을 취소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제주의 시내에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관광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 될 것 없으니 편안하게 생각하고 오라 해도 꿈쩍 않는다. 공항과 비행기, 제주 시내의 식당에 드나들기가 걱정된다고 한다. 제주도 무비자입국을 임시 중단한다고 하니, 역설적이지만, 제주도 여행이 오히려 더 안전해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집을 나설 때는 마스크를 챙기고 손은 더 자주 씻는다.

뇌졸중으로 편마비 상태인 환자가 6개월이나 대학병원의 3인실에 입원한 상태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경우는 지금은 제도 상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년 전이고 그 아들이 병원 주인이나 다름없던 최고 경영자의 곁에서 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회복에 대한 절실함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불편한 기색 없이 어머니를 용납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변함없다.

형제들과 협의한 끝에 동생이 어머니를 모셔가기로 했다. 당시 동생들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재하청공장으로부터 수주를 받아 납품을 하던 그 작은 사업체는 바람 앞의 등불이어서 매일 매일이 아슬아슬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해야 하는 기반이니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자금 대출에 대한 보증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며 대출금 상환 요청과 함께 급여가 압류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힘겨워 한 겨울 지하도의 노숙인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아비의 책임을 져버릴 수는 없으니 그리 할 수는 없었다. 사직을 결심했다.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며 갑작스럽게 사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밝혔다. 결국 전후 사정을 감안해 사직 후 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하는 조건으로 사직이 처리되고, 퇴직 일시금으로 금전 문제를 해결했다. 1년 후에는 한 직급 승진과 함께 정규 직원으로 다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선 어머니의 건강은 그리 바람직하게 유지되지 못했다.

제주는 바람과 돌은 많아도 물은 귀한 곳이다. 특히, 제주에 내리는 빗물은 대부분 돌 틈으로 스며들어 땅 속을 흐르다 바닷가에서 용천수로 솟기 때문에 중산간 지역에서는 샘은 물론 고인 빗물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개천 역시 큰 비가 내릴 때에만 잠시 흐를 뿐 늘 말라 있다.

제주의 오름 368개 중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은 10여 곳에 불과한데 물영아리오름이 그 중의 하나다. 표선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의 분화구는 빗물이 빠져나가지 않아 습지를 이루며 귀한 습지 동식물과 곤충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그 생태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7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섯 번째 지정된 습지다.

해발 400미터의 제주 동남부 중산간 지역 위치한 물영아리오름은 그 높이가 128이고 아래쪽 둘레는 4 km가 넘는다. 오름 주변에 넓은 초지가 자리하고 있어서 오래 전부터 소와 말의 방목장으로 사용되었다. 가축이 초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래 전에 쌓아올린 돌담인 잣성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물영아리오름은 거문오름의 세계자연유산센터나 동백동산의 습지센터만큼은 아니지만 방문자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주차장과 화장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고 아담한 공원 안엔 방문자 안내센터도 있다. 공원의 조형물에서 물영아리오름이 품고 있는 귀한 생물에 관한 설명을 읽고 탐방로에 들어서면 눈앞에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그 끝에 물영아리오름의 우거진 숲이 보인다.

입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오른쪽의 드넓은 초원을 살피며 걷다가 갈래 길을 만나 다시 왼쪽의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분화구로 바로 올라가려면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계단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추천하지는 않는다. 물영아리오름 둘레길은 뒤쪽에서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 습지까지 왕복하는 거리를 포함해도 6 km가 채 되지 않지만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풍부한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둘레길로 접어들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진한 노란 꽃들을 만났다. 지천으로 자란 달래 무더기 사이에서 높이 자라 오르지도 않고 겨우 마른 풀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 꽃들을 보려 발걸음을 옮기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진한 달래향이 풍겼다. 눈에만 담기 아까워 사진을 찍으며 봄이 오기 전 눈 위에 누운 듯 피는 복수초라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 던 이들이 다가와 제주 세복수초라고 설명을 한다.

세복수초꽃을 뒤로하고 접어든 오솔길은 평탄하고 일부 구간을 시멘트 포장까지 되어 있다. 길 양쪽의 나무에 잎이 피어나면 이 길은 길고 긴 나무 터널이 될 것이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일정한 거리마다 세워져 있는 위치 안내 표지판을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으며 걸었다. 마른 고사리 밭을 지나 곰솔 숲을 빠져나가니 드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그 끝 먼 곳에 또 다른 오름이 보인다. 여문영아리오름이다. 여기서부터는 물영아리오름의 뒤쪽 산기슭을 걷는다.

아직 어린 비자나무가 길을 따라 심어져 있다. 그리고 마른 풀 위에 누운 새우란 잎이 자주 눈에 띈다. 4월 말부터 꽃이 피는 새우란은 활짝 피면 마치 여러 어린 소녀들이 폭 넓은 치마를 입고 나풀나풀 춤을 추는 듯 바람에 꽃잎을 흔든다. 통상 새우란 꽃잎은 짙은 갈색과 희색이 섞여 있지만 이곳 물영아리오름에 자생하는 새우란 중에는 꽃이 온통 노란색 일색인 금새우란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제주의 어느 오름보다 많은 새우란 포기가 오솔길 옆 얕은 숲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물영아리오름 뒤에서 분화구에 오르는 계단 길은 앞쪽의 길보다는 짧고 가파르지도 않아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계단 양쪽에도 새우란이 보였다. 마치 누군가 길 가까운 곳에 심어 두고 보살피는 듯하다. 분화구 능선에서 습지 아래까지 이어지는 길은 모두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방문자가 많아도 분화구 능선이 훼손되지는 않을 듯했다. 문득 방문자 수가 급증하면서 야자매트를 깔아둔 산책로마저 패이기 시작했던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의 능선이 떠올랐다.

물영아리오름의 능선에서는 숲이 울창해 능선 밖의 풍경은 볼 수 없다. 겨울엔 나뭇가지에 비치는 햇빛이 아름답고 여름엔 그늘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할 것이다. 오름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 전망대에서 멀리 겹겹이 겹쳐진 오름들을 바라보며 오름 능선에서의 아쉬움을 달랬다. 물영아리오름 입구까지 멀지 않은 길은 돌담을 따라 걷는다. 방목 중인 가축들이 목장을 벗어나지 않도록 오래 전 쌓은 중잣성이다.

상잣성은 말이 한라산의 삼림지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중산간 지대 위쪽에 쌓았고, 아래쪽엔 하잣성을 쌓아 가축이 농경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가운데에 중잣성은 목장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이다. 물영아리오름의 중잣성은 아직 옛 모습을 거의 잃지 않고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자란 나무가 제법 실하고 바위마다 붙은 이끼가 오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