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면?

/ 기사승인 : 2020-03-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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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군침이 가득한 입에 생선을 홀랑 집어넣고 먹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는 속담은 대게 이렇게 안 봐도 부정적인 결과가 훤할 때를 두고 말한다. 생선에 눈이 먼 고양이는 일을 어그러트릴 것이 분명하다.

최근 홈쇼핑업계 방송심의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T커머스 홈쇼핑 업체 SK스토아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지난 18일 SK스토아 측은 깨끗한 나라의 화장지를 2만5910원에 판매하면서 방송을 선거운동 콘셉트로 꾸렸다.

문제는 출연자들이 분홍색 옷을 입고 등장하면서 불거졌다. 붉은 어깨띠를 착용한 출연자들은 가격의 ‘2’를 재차 강조했다. 해당 방송은 선거운동 콘셉트였다고는 하지만, 옷의 색과 행동이 특정 정당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TV 앞에서 해당 방송을 시청한 소비자들은 ‘선거법 위반 아니냐’며 SK스토아 측에 항의하기도 했다.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예비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지하철역 등 우리 주변에서 최근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방송 영역은 다르다. 공직선거법 제98조에는 ‘누구든지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방법의 여하를 불문하고 방송시설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위한 방송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비판은 ‘자체 심의’ 대목에서 나온다. 통상 홈쇼핑 판매 방송영상은 사내 심의를 거쳐 만들어진다. 제작과정에서 판매 영상에 사용되는 영상과 문구 등이 심의 규정에 위반되는지를 살핀다. SK스토아도 자체 심의를 거쳐 해당 영상을 제작했다. 다만, 특정 정당을 연상케 하는 콘셉트의 방송에 누구도 문제 의식을 갖지 못했다.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뒤에야 문제를 인지했다면 자체 심의 기능이 있는 것인지, 유명무실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방심위는 홈쇼핑 방송 영상이 규제를 준수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제작 영상을 사전에 심의하기란 역부족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TV에서 방송되는 분량이나 접수되는 민원에 대해서 심의를 진행한다”며 “홈쇼핑 방송분 사전 심의에 대해서는 홈쇼핑 업체가 자체적으로 심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 심의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국회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상품판매방송 민원접수 심의제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5년간 접수된 민원접수 건수는 모두 910건이다. 심의상정 건수는 486건에 달했으며, 상품별 법규정 미준수는 64건(10.1%)로 확인됐다. 당시 최다 심의 제재를 받은 CJ오쇼핑은 방송심의 관련 조직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방송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SK스토아는 공식입장을 통해 ‘자체심의’를 강화하겠다는 밝혔다. 2018년도 홈쇼핑 업계 대응과 비슷하다.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에도 ‘자체심의’라는 대책은 반복되고 있다. 제자리걸음 수준의 심의시스템이 또 다른 논란을 방지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할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smk503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