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은행 투자성향 분석, 달랐다면 사모펀드 피해 줄었을까

기사승인 2020-07-04 05:00:03
- + 인쇄
허술한 은행 투자성향 분석, 달랐다면 사모펀드 피해 줄었을까
라임 펀드와 관련해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계약취소를 촉구하는 기자간단회 현장 /사진=송금종 기자 

[쿠키뉴스] 조계원 기자 =#. 70대 주부 A씨는 2019년 3월 보험금의 입금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했다가 안전한 상품이라는 권유에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가입했다. 당시 은행직원은 투자경험 없는 A씨의 투자자성향을 ‘적극투자형’으로 임의기재했다.

#. 50대 직장인 B씨는 2019년 7월 은행에 방문하여 1년간 운용할 수 있는 안전한 상품을 요청한 결과 라임 무역금융펀드 투자를 권유받고 상품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직원이 B씨의 투자자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기재했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임 무역금융펀드와 관련한 4건의 분쟁조정 사례 중 2건의 일반투자자 피해 과정에서 모두 투자성향 분석이 재구실을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가입 고객의 투자성향을 확인하는 ‘투자정보확인서’가 모두 은행 직원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투자정보확인서는 지난 2009년 자본시장법이 발효되면서 도입된 제도로,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성향과 맞지 않는 금융상품을 판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융상품 가입전에 ▲연령 ▲투자가능기간 ▲투자경험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지식수준 ▲수입현황 ▲위험선호도 등 여러 항목으로 구성된 ‘일반투자자 투자정보확인서’를 받는 제도를 말한다.

사례의 A씨와 B씨처럼 원금보전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이 있는 위험 상품을 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품 판매 전에 고객에게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라임 사례를 넘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헬스케어 펀드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여러 사모펀드 사태에서 모두 투자정보확인서 상의 투자성향분석이 조작되는 불완전판매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허술한 은행 투자성향 분석, 달랐다면 사모펀드 피해 줄었을까
금융투자상품 가입 전 필히 거쳐야 하는 투자성향 분석 예시
“제대로 지키기는 지켜야 하는데.”

은행의 펀드 판매 현장에서는 고객의 투자성향 분석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투자성향 분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펀드판매 경험이 있는 은행 직원은 투자성향 분석에 대해 “지키기는 지켜야 하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은행 찾아오는 고객들 10명중 9명은 원금 보전을 원하는 고객들이라, 투자성향에 맞추다 보면 상품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은행에는 캠페인(특정상품 판매 종용 행위)이라는 것이 있는데, 위에서 특정 상품에 대해 캠페인이라도 내려오면 그렇게라도 해서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은행 직원은 “투자성향 분석은 현장에서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진다. 고객들도 성향분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며 “투자상품의 위험을 등급에 따라 나누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사실 성향분석은 설문으로 진행되는 만큼 설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원하는 고객의 투자성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밝혔다.

허술한 은행 투자성향 분석, 달랐다면 사모펀드 피해 줄었을까
“투자성향 조작 막을 길은 ‘일벌백계’”

은행 판매 현장의 투자성향 분석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리고 문제의 재발을 막기위해서는 ‘일벌백계’를 통해 은행의 자발적인 노력을 불러와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특히 투자자의 투자성향을 임의기재하거나 누락하는 등 적합성 원칙을 위반할 경우 30% 정도에 불과한 배상비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높은 배상비율을 통해 은행의 자정노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감원은 DLF 분쟁조정에서 투자성향 조작 등 적합성 위반 시 30% 정도의 원금 배상 비율을 적용했다”며 “배상비율을 전액 배상 등으로 대폭 확대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직원들의 불완전판매를 막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배상비율을 높이는 것와 함께 배상비율을 규정이나 법률 등을 통해 명문화해야 한다”며 “불완전판매 시 은행이 막대한 배상에 나설 수 있다는 확실한 우려를 가지고 있어야 계속되는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chokw@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