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건, 아파트에 산다는 건

[하우스푸어 전락 불구 아파트 사려는 청년들… 삶 여러 선택지 보장 공공 차원 고민 시작할 때

기사승인 2020-08-03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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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사람이 아파트 사서 돈을 벌면 더러운 세상이고 내가 아파트 사서 돈을 벌면 좋은 세상이다.” SBS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 나온 대사이다. 영끌, 그러니까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산다는 것. 하우스푸어가 될지언정 내 소유 아파트 한 채는 소유하는 것이 언젠가 이득이 된다는 것. 이를 두고 영.끌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 이어질 글은 영혼을 끌어모으다 못해 하얗게 불태우려는 삼십대 청년층의 말 못할 속사정에 대한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건, 아파트에 산다는 건
▲아파트가 뭐라고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청춘의 우울한 2020년. 시각화=이희정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7월31일부터 ‘임대차 3법’이 시행됐다. 핵심은 이렇다. “전세와 월세를 5% 이상 올릴 수 없다”, “전·월세 계약 당사자인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한 달 내 계약 내용을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계약 변경 및 해지할 때 신고해야 한다”, “2년 동안의 전·월세 계약을 맺은 세입자는 같은 집에서 2년 더 살 수 있다”. 이렇게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가 바로 임대차 3법이다. 전월세신고제를 제외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는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와 여당이 속도를 낸 이유는 폭등하는 집값, 더 정확히는 아파트 값에 동요하는 여론을 진정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역사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도시화와 맞물려 시작됐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든 사람들로 인해 도시는 극심한 주택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아파트의 본격적인 시공은 이런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아파트는 부동산 개발붐을 타고 점차 성격이 바뀌어 갔다. 

아파트는 한국 부동산 개발의 핵심이다. 또 부동산 개발은 우리나라 경제의 압축성장의 핵심 수단이었다. 산업화 초기 건설 붐을 타고 강북과 강남 개발의 정중앙에는 아파트가 있었다.  아파트는 호황을 누렸던 건설사의 주머니를 불렸고, 역대 정부는 아파트를 경제 부양의 노른자위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개인이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도록 주택을 사도록 한 주택정책도 서민들의 아파트붐을 부채질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내 집 마련 이상의 의미이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게 경기에 따라 아파트 시세 차익을 손에 쥘 수 있는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역대 정부마다 아파트 값에 따라 지지율이 오르기도, 곤두박질쳤다. 

삼십대, 아파트, 불안감, 영끌 그리고 하우스푸어

지금의 이슈도 단연 아파트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과 주요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이 이어지자 정부는 계속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각종 규제 법안을 내놓으며 아파트값 잡기에 서두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삼십대 청년층이 아파트 구매에 열을 올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서울의 4000건이 넘는 아파트 매매건수에 삼십대가 1200건 이상의 아파트 매물을 매입하자 주요 언론은 삼십대가 아파트 부동산 시장의 ‘큰 손’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을 타고 쏟아지는 아파트 뉴스는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있다. 집은 있는데,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다보니 생활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나타낸 말이다. 삼십대 청년층은 왜 아파트 구매에 열을 올릴까. 상당수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수 있음에도 왜 아파트에 연연할 수 밖에 없을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불안감’이다. 

불안을 부채질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100% 가점제가 적용되는 서울의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 분양 아파트에서 삼십대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 꼽힌다. 부양가족 수가 없거나 적고, 무주택기간도 길지 않은 삼십대는 ‘당연히’ 가점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청약으로 내 집 마련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아파트값이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도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감염병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자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를 장만하겠다는 불안심리.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동원하고 무리한 대출을 통해 아파트 매매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현상.  

한국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건, 아파트에 산다는 건
청춘 그룹 안에서도 주거지가 얼마나 저렴하냐에 따라 구획이 나뉘어진다. ▲사진=김양균 기자

관련해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경제구조 변화와 우리 경제에의 영향’ 보고서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보고서는 “코로나19 확산과 대응과정에서 실업, 소득감소, 경제 및 사회 활동 제약을 경험함에 따라 위험회피 성향이 강화되었고, 불확실성에 대비한 가계의 예비적 저축 유인이 증대시킨다”는 전망을 내놨던 것이다. 

청년층 인구 이동과 주택보급률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논문도 눈길을 끈다. ‘청년층의 인구이동과 주택정책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수도권을 중심으로’(박부명, 김성아., 2020.1) 논문은 단독다가구 주택의 증가가 청년층의 인구유입을 늘리지만, 아파트 같은 주택보급률의 상승은 청년층의 인구이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 청년층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차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지역으로의 진입을 주저하고 있다고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아파트 위주의 신규주택 공급은 규모와 가격 면에서 청년층이 거주지로 선택하기 어렵다는 게 수치로 확인됐다는 말이다. 19~29살 사이의 청년층이 특히 이러한 주거 형태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들의 지역으로의 이동은 단독·다가구 주택 외에도 오피스텔과 비아파트 주택유형이 얼마나 있는지에 영향을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5~34세 청년층은 전체 아파트 준공면적 증가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아파트가 그 지역에 얼마나 있느냐. 이것이 거주를 위한 이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즉, 청년층 안에서도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이 선호하는 주택 유형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아파트를, 결혼과 출산을 경험한 청년 그룹은 아파트를 선호했다. 이런 경향은 삼십대의 아파트 구매를 위한 영끌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집, 밥, 돈.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한 글자로 돼있대요.”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더라도 아파트를 소유해야한다는 불안감. 이것은 청년주거정책의 사각지대가 너무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현상일 수 있다. 아파트를 사는 데 영혼을 갈아 넣는 것 대신에 더 많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기회를 보장해줄 책무. 이를 위한 해결책이 없지는 않다. 공공차원에서 저렴한 임대주택을 지금보다 더 많이 공급하고, 연령별로 청년 주거 정책을 차별화한다면, 청년들의 인생 선택지에는 아파트 외에도 다른 항목이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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