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고구말] ‘윤희숙 신드롬’…“저는 임차인입니다” VS “저는 월세삽니다”

기사승인 2020-08-04 05: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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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고구말’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고구마, 말의 합성어로 답답한 현실 정치를 풀어보려는 코너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매일 내뱉는 말을 여과없이 소개하고 발언 속에 담긴 의미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의도 고구말] ‘윤희숙 신드롬’…“저는 임차인입니다” VS “저는 월세삽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의 '임대차 3법'을 비판하는 자유발언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정유진 인턴 기자 = “저는 임차인입니다”

지난 달 30일 정부와 여당의 ‘임대차 3법’을 비판한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5분 연설이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논리정연한 발언과 대중의심정을 대변하는 자세로 야당은 물론 여권 지지층의 공감을 얻었다는 평가다. 실제 윤 의원의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윤 의원의 발언을 두고 임대인만을 보호한다며 견제에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 발언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정치권 내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윤 의원이) 임차인임을 강조했는데 소위 ‘오리지널’은 아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임대차 3법’을 비판한 윤 의원의 자격을 지적했다. 그는 윤 의원이 “국회 연설 직전까지 2주택 소유자이고 현재도 1주택을 소유한 임대인”이라면서 “평생 임차인인 것처럼 이미지를 가공했다”고 비난했다. 또 그는 “윤 의원이 자신이 임차인임을, 그 설움을 연설 처음에 강조했지만 (사실은) 임대인 보호를 외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이 정작 대전 아파트 1채와 경남 밀양 건물, 대구의 주택과 상가 등 부동산 3채를 보유 중인 다주택자라는 것이 드러나 역풍을 맞았다. 

한편 박 의원이 “(윤 의원이) 눈을 부라리지 않고 ‘이상한 억양’ 없이 조리있게 말하는 건 그쪽(통합당)에서 귀한 사례”라고 한 것이 알려지자, 통합당은 즉각 “특정지역을 폄훼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박 의원은 “특정 지역 사투리를 빗댄 표현이 아니다. 정부 여당을 공격할 때 쓰는 격앙된 톤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글을 삭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국민 누구나 월세를 사는 세상이 다가온다. 전세가 소멸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과거 개발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1일 페이스북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이 나쁜 현상이 아니다”라며 윤 의원의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 주장을 반박하면서다. 그는 “전세금을 100% 자기자본으로 하는 세입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은행 대출 낀 전세”라면서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거나 (전세로) 은행에게 이자 내거나 결국 월 주거비용이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도 말했다. 

그는 또 “월세가 정상이면 당신부터 월세 살아보라”는 댓글에 “아파트 투기없이 30년 넘게 북한산 자락의 연립주택에서 실거주의 목적으로 살아왔다. 지금은 월세도 살고 있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의원의 발언을 두고 공감능력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황규환 통합당 부대변인은 2일 구두 논평을 통해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월세가 전세보다 훨씬 부담이라는 것은 상식 같은 이야기”라며 “서민들의 삶을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한 분이라면 그런 말씀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3일 “월세 사는 사람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희숙 의원의 발언이 사이다? 주거안정성 핵심을 잘못 짚은 발언”

정의당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3일 기자회견에서 전세가 줄어 임차인의 고통이 커질 것이라는 윤 의원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주거 안정성의 핵심은 ‘한 집에서 얼마나 오래 거주할 수 있느냐’라며 임대차 법 통과로 서민들은 잦은 이사를 피할 수 있어 이사비용과 복비와 같은 ‘숨겨진 월세’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대변인은 “지난해 순전세가 전체 가구의 15.1%에 지나지 않았고 이미 월세 또는 ‘반전세+월세’가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며 “이번 임대차법이 마치 전세소멸의 상당한 근거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통계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윤 의원의 발언대로 임대차 법은 더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했다”며 입법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세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윤 의원의 주장에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비판이 이어진 가운데, 여권에서 윤 의원에 대한 긍정적 목소리도 나왔다.

“통합당 경제혁신위원장으로서 당당하기 위해 2가구 중 1가구를 내놓았다고 하니 신선한 충격”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페이스북에 주택을 처분한 윤 의원의 ‘솔선수범’을 칭찬하며 이 같이 적었다. 그는 “윤 의원처럼 국회의원들이 모두 1가구 주택을 솔선수범해서 실천한다면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 불신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며 ‘여야 1가구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윤 의원을 향해 민주당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데 대해선 “우리 당에서 민감하게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며 소신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보수가 저런 식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한 것”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3일 페이스북에 윤 의원의 발언을 두고 ‘보수의 업그레이드’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진 전 교수는 “진보진영을 강화하는 것이 곧바로 진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보) 진영은 강화됐어도 사회를 외려 퇴보시키고 있다”라며 통합당을 소외시킨 채 민주당이 부동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는 것을 우려했다. 

통합당에서는 윤 의원이 일약 스타가 됐다. 대국민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평가하며 여론을 등에 업고 대여공세의 힘을 실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아가 윤 의원과 같이 자유발언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대국민 여론전’을 이어가겠다는 등 방향성도 설정하는 분위기다.

ujiniej@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